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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해당되는 글 31건
- 2012.05.18 Germany to Czech
- 2012.04.23 Germany 2
- 2012.04.15 Germany
- 2011.03.04 Poland
- 2011.02.02 대한민국
- 2011.01.03 Uganda
- 2010.11.23 2011 유럽여행계획 3
- 2010.11.19 Tanzania to Uganda 1
- 2010.11.19 Zambia to Tanzania
- 2010.11.19 Malawi to Zambia
글
오늘은 5월 18일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2주년이 되는 해. 이 해에 내 친구들이 태어났다.
MB는 4년째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분의 역사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5월은 잔인한 달이다.
많이 아팠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정신이 그야말로 혼미(!)한 달이다.
그 와중에도 살아남는 법을 찾아서 아등바등하며 잔인한 봄의 한가운데서 다시 옛 사진을 들추고 있다.
내일은 내 친구 만석이가 결혼하는 날.
십삼 년 전, 그 때가 새록새록 생각나는 궁상 맞는 오늘이다.
Anyway
다시 1년 전 유럽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Germany Berlin 8 Jan 2011
<Berlin Wall>
베를린에 있는 기념관 벽면에 붙어 있는 그림이다. 장벽을 쌓던 모습. 군인들의 총을 등 뒤로 벽돌을 쌓던 벽공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목숨만이라도 부지한다면 다행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 지금은, 이렇게 살아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삶이 그 때보다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진리, 정의, 사랑 이런 것은 이 세상에서는 흉내만 내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아주 '비성경적인' 생각들이 스며드는 잔인한 5월이다
서른두 살의 청년에게 저런 단어는 점점 괴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Germany Berlin 8 Jan 2011
<Berlin Wall 옛 소련의 브레즈네프와 옛 동독의 호네커>
꽤나 유명한 키쑤. 정치의 역사는 무섭다.
모른척 살면 답답하고, 알아갈수록 이해안가고, 아는 것들은 혼란스럽고.
생각의 아웃소싱을 해야겠다. 믿을만한 사람을 믿어서 생각의 집중화를 해야겠다.
Germany Berlin 8 Jan 2011
<Berlin Wall>
대한민국의 휴전선은 예수님오시기 전에 끊어질까?
1년 사이에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그 뒤를 이었다. 독재약발이 좀 떨어질 때가 되어가는 듯한데, 이 한반도의 분단은 언제까지 일까.
Germany Berlin to Czech Praha 9 Jan 2011
<유럽여행과 함께한 내 짐>
베를린을 떠나 프라하로 간다. 다시 라이프치히로 돌아갈 테지만, 종석 형을 만나기 위해, 유명한 프라하 성을 보기위해 떠났다. 우간다를 떠날 때부터 함께했던 내 짐. 왼쪽 가방은 말라위에서 선교사님께 받은 가방이고, 오른쪽은 자전거 때부터 함께한 라푸마 배낭. 침낭과 배낭을 제외한 자전거 용품은 거의 다 정리를 하고 남겨놓은 것들이다.
정말정말 감사한 것은, 1여년의 장기여행 기간 동안 양말 한 짝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 사실 7년 전 첫 해외여행이었던 스리랑카에서 난 내 모든 짐들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캐리어를 잃어버리고, 여권이든 가방을 잃어버리고..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그 모든 짐을 다시 다 찾았다는 사실.
어쨌든 난 이 짐들과 함께 프라하로 향한다.
Czech Praha 9 Jan 2011
<고성이 많다. 고성은 내 친구>
종석 형을 만났다. 프라하에서 말이다. 배고픈 대학 2학년 시절, 학교 앞 맥도날드에서 형이 나에게 버거세트를 사주었던 그때를 난 아직 기억한다. 형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난 그때 참 배가 고팠다.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십년이 지나서 형은 결혼을 하고 체코 주재원이 되어 왔고, 난 여행객이 되어 만났다. 감동이다.
Sokolska youth hostel에 머물렀다.
Czech Praha 9 Jan 2011
<길거리>
프라하의 거리는 멋있다. 지상전철인 Tram도 운치가 있고, 건물이 모두 달력사진이다. 세계대전의 소용돌이가 다행히 빗겨간 곳이었다.
Czech Praha 9 Jan 2011
<종석형님의 귀여운 손짓. Smichov, Praha>
그 분. 애아빠. 남편.
주일에 교회를 못 찾아서 커피숍에서 잠깐 성경을 읽는 것으로 우리의 소임을 다했다.
지난 아프리카에서 꾸었던 꿈을 나누었고, 칙칙한 여행자에게 달콤한 커피한잔의 여유를 느끼게 해준 프라하의 오후였다.
1년이 지난 지금 어느 작은 도시에서 누나와 아이와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Czech Praha 9 Jan 2011
<현다이 in Praha>
다른 좋은 그림은 다음으로 남겨두고, 전철역에 보인 큼지막한 현대차광고를 한 컷 올린다.
조폭 현대지만, 해외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유럽의 멋진 건물,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꾸어다놓은 보릿자루마냥 덩그러니 브이 자를 그리는 독사진이 싫어서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대며 쏘다녔지만, 이쁜 그림들은 잘 안 나왔다.
그래도 덕분에, DSLR M모드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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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many Berlin 8 Jan 2011
<Berliner Dom>
꽤나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Berliner Dom>
머 그렇다고.
<Berlin Tower>
대도시에는 하나씩은 있는 타워.
<Doner Kebap>
케밥이 이렇게도 맛있을수가!
허기진 여행객의 배를 완전 맛있게 채웠다.
<Brandenburg-gate>
우중충한 날씨에도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Free Tour>
<Lewis - Free tour guide>
<Berlin Wall>
2011년 1월 8일
유럽여행의 큰 테마는 동유럽과 영국이었다. 요즘 한국 청년과 별 다를 바 없이 나도 특별히 민족정신이나 남북분단에 대해 이제는 먼발치에서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나, 가슴깊이 불편함이 남아 있는 이유는 나도 한국인이어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비록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크게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한번쯤은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베를린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하며 여행가이드책자에 나와 있는 유명한 건물들을 지나치며 찾아간 곳은 베를린 장벽. 하루를 정해진 루트를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다니는 Free tour의 몇 가지 테마 중에 'Red Berlin'이라는 주제로 과거 독일의 분단과 나치와 관련된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설명을 듣는 일정을 선택했다. 지하철,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안타깝게도! 가이드의 설명 중에 상당수를 이해하지 못해서너무나도 아쉬웠지만, 그래도 눈으로 보고 듣는 그 시간에 나는 북한을 생각하고 남한을 생각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불편함을 느꼈다. 얼마 전에 나꼼수를 통해 들은 천안함의 진실, 최근의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사건 등이 나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도 한번 생각해봄직하다.
지난 30여 년간,
부산,서울,스리랑카,미국,아프리카,유럽 등을 돌아왔다. 짧고 또는 길게 거쳐 간 곳들, 다양한 곳을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힘이 된다. 그리고 한 군데가 더 있다. 가보지 못한 곳. 과연 갈일이 생길 것인가!
북한.
내 인생에 있어서 최종 목적지가 거기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아프리카여행이 끝날 즈음부터 했었는데,
막상 독일에 와서는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비록 지금 2012년 4월이 된 지금은 그 기억들을 다 잊어버리고 일상에 허우적대며 살고 있지만
옛 기억을 더듬으니 다시 그 소망함이 새록새록 피어나는구나!
서른 두살의 청년은 아직 꿈 속에 파묻혀 산다.
일과 결혼, 육아라는 내가 앞으로 거쳐야할 중요한 인생의 테마가 이런 꿈과 모순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다.
인생아 바람같이 흘러가라!
욕심을 버리고, 더 아파하고, 더 좌절하고, 더 괴로워하며,
그렇게 나를 더 알아가자.
난 정말 욕심이 많고, 너무 초라하고, 때론 너무 부끄럽지만,
그래도 살아봄직한 곳에 서 있다.
계속 간다.
갈수 있는 곳까지, 그때까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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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오늘은 2012년 4월 15일.
blog 스킨 개편을 맞이하여 1년 하고도 3개월 전의 일들- 유럽여행- 을 정리해볼 심산이다.
그동안 일과 사랑, 진로에 대한 고민들로 내가 정말 즐겨왔던 일들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즐길 수 있는 일들 찾아서 다시 시작하며, 내 고집대로 안 되는 내 일들은 물 흘러가듯이 흘려 보내려한다.
마음을 편히 가지려 한다.
정말 내가 마음으로 내 길을 계획할지라고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이시다!
그래서 큰마음 먹고 기타를 질렀다. 타격이 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든다. 아주!
좀 엉뚱하게 적용을 해도 뭐 나쁘지 아니하지 않은가가 아니지?
그리고 조금씩 틈이 날 때마다 유럽여행을 정리해 보려한다. 다행히 매일 썼던 여행일기와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내 가슴에 잠겨있던 열정의 맨홀뚜껑을 열어보려한다.
Germany Berlin 8 Jan 2011
<Berolina Youth Hostel>
라덱과 함께했던 폴란드의 기억을 뒤로하고 엉망진창으로 독일 베를린에 도착한 1월7일 저녁.
Berolina Youth Hostel을 찾아 돌아 다녔지만, 비가 추적추적, 사방은 어둑어둑, 지도는 계속 엉뚱한 방향으로 나를 인도했다.
동네 사람에게 전화 한 통화 부탁을 했지만, 내 몰골이 영 아니었는지 거절당하기도 하고, 두 눈 부릅뜨고 다시 두 무거운 가방을 끌고는 결국에는 찾아내었다.
미국, 유럽 youth hostel은 mixed room이 많다. 남녀 혼방이라는 것이지. 4인 single mixed였는데, 1월 7일내가 체크인할때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옴마야~' 1m 떨어진 옆 침대에 정말 예쁘신 유럽백인 아가씨가 주무시고 계신 것이 아닌가!' 옆에 스노보드가 있는걸 보니 보드를 타러온 것 같은데, 아 이 한국의 젊은 청년의 가슴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던 아침으로 기억한다.
Germany Berlin 8 Jan 2011
<Mercedes Benz shop>
continental automotive를 3년 넘게 근무했다. 입사하고 1년 정도는 siemens VDO 직원이었다. 사실 siemens에 입사했다고 나름 뿌듯했는데 1년 만에 M&A되는 바람에 졸지에 continental 직원이 되었다. 어쨌든, 자동차관련 일을 하다 보니 벤츠,아우디,BMW등 독일 차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베를린 시내의 한 벤츠 매장을 둘러보고는, 나도 평생에 한번은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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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szawa 중앙기차역 >
폴란드에 도착했다. 1월4일 우간다 엔테베공항에서 공항직원의 어이없는 의심으로 출국시간 30분을 남겨놓고 보딩패스를 받고는 부랴부랴 비행기를 탔다. 1년 동안 무슨 돈으로 아프리카와 유럽을 다닐 수 있냐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나를 추궁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내 여권과 항공권을 복사한 후에야 보내줬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으나, 어떡하겠어.
벨기에를 거쳐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어제는 여름이었으나, 오늘은 겨울이었다. 킬리만자로를 위해 준비했던 타이즈내복을 이제야 사용할 수 있었다. 내복은 나의 힘.
공항과 기차역에서 한참을 어버버버 하다가 라덱이 있는 Torun을 향해 출발했다. 영어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어서 힘들게 경로를 찾아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Torun은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난 곳이다. 라덱이 사는 곳이기도 하고. 한적한 느낌이지만 뭔지 중후함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그전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우간다에서 내 짐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2005년 스리랑카에 도착했을 때도 짐이 도착하지 않아서 난감했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겼다. 그런데! 다음날 라덱집으로 늦게 도착한 내 가방을 항공사에서 직접 가져다주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Palace of Culture and Science in Warsaw>
바르샤바 도착해서 토룬으로 가기위해 시내를 서성거리다가 찍은 사진. 춥다.
1월 6일은 주현절로 폴란드의 공휴일이다. 라덱과 그의 여친님과 함께 미사를 보러갔다. 여기까지 와서도 커플에 끼어있어야 하는 이 안타까운 쏠로대마왕이여. 통탄할 일이로세.
14세기와 19세기에 걸쳐 반반씩 지어졌다는 leaning Tower. 땅의 불균형 때문에 저렇게 되었단다. 오른쪽에 라덱과 왼쪽에 예쁘신 여친님-진짜 예쁘셨다-이 하루 종일 나를 데리고 다니며 Torun의 구석구석을 보여줬다.
감솨감솨.
맛있게 먹었다. 그 커플과 함께.
오후 한나절을 기차에서 보내고, 기차요금을 더 내고 Berlin으로 향했다. 나 왜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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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에 시작한 아프리카여행을 슬슬 마무리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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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zania Dar esSalaam 15 OCTP2010
<동아프리카 최대시장 Kariakoo에서 구입한 약품 처리된 모기장>
하나에 $3가 조금 넘는 가격으로 모기장 80개를 구입했다. 후원금 $200에다가 WJ가 나머지를 부담했다. WJ와의 만남, 손선교사님과의 만남은 참으로 절묘했다. 잠비아를 떠나기 하루 전에 선교사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WJ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동향의 멋진 청년이었다.
모기장은 선교사님을 통해 탄자니아에서 필요한 여러 곳으로 나누어졌다. 작은 나눔을 할수 있어 감사하다
Tanzania Dar es Salaam 16 OCTP2010
<Coco beach – 손선교사님의 아름다운 뒷모습>
Dar es Salaam의 평화의 항구란 뜻이다. 동아프리카최대의 항구이다. 손선교사님과 WJ와 함께 찾아간 Coco beach는 예전에는 관리가 잘되어서 외국인이 많았다는데 지금은 그때만 못하다고 한다. 하지만 바다를 오랜만에 봐서 인지 바다의 짠 냄새가 향긋하다
손선교사님과 얘기하면서 삶의 방향과 가치, 실천에 대한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국의 평범해 보이는 일상도 분명 가치가 있다. 하지만 가치 있다고 믿는 것, 실제로 가치 있는 것들을 위해 뛰어드는 용기가 우리에게 좀더 필요하지 않을까? 몇 개월 후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상을 살게 된다. 취업을 하고 가정을 꾸릴 예정이다. 직장과 가정, 교회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 선을 긋고 할 것들을 하고 포기할 것들은 포기하며 주어진 일에 열심히 다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만족하기에 이번 아프리카여행은 너무 많은 것들을 보았다. 이 가슴에 놓여진 불씨를 언젠가 다시 활활 태우리라.
Tanzania Dar es Salaam 16 OCTP2010
<WK과 SH가 후원해준 tent – 더 필요한 곳에 쓰이기 위해 선교사님께 드림>
손선교사님은 탄자니아의 시골에 우물을 파는 사업을 하신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동안 전기는 없어도 살만하지만 물이 없으면 정말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만큼 물이 중요한데 아프리카의 많은 곳이 수도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쉽게 질병에 노출되어있다. 생명수가 될 우물을 파기 위해 일하시는 선교사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본인이 주선한 소개팅을 통해서 결혼에 골인한 커플이 후원해준 것으로 산 텐트인데 그 친구들도 기쁨으로 여길 것이라 생각한다.
Tanzania Bagamoyo 19 OCTP2010
<WJ – Livingstone의 흔적이 있는 Bagamoyo의 Catholic Museum으로 가는 길에서>
부산사나이 WJ. 유부남 WJ, 집사님 WJ. 한국에 있을 때는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비슷한 길을 가고 있었고 나도 그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정상이고, 약간이라도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작 내가 그때의 생각으로 비추어 비정상적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이제는 판단할 수가 없다. WJ또한 그런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잘생겼다.
한국이 이렇게까지 성장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은 교육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들이 모여서 한국의 큰 문제라고 얘기하는 주제 중 하나가 교육이다. 물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의 교육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잘하는지를, 설령 찾았다 하더라도 남과는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이 한국 교육의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수능’을 향해,’대학’을 향해,’취업’을 향해서 가는 길이 너무나도 똑같고 그것이 정상이라 생각한다. 다른 길을 가는 것은 너무나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도 이렇게 여기에 오기까지는 초인적인 용기가 필요했다. 살기 위한 발버둥. 그랬었다.
Tanzania Bagamoyo 19 OCTP2010
<Bagamoyo에서 만난 한국유니폼>
한국시장이 아니다. Tanzania Bagamoyo – 독일식민지 시절 수도, 노예무역이 성행했던 곳- 중심가의 한 옷 가게였다. 한국의 동네 어귀에 초록색 헌옷수집함에 모인 옷들이 분류되어 이런 곳에 오는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WJ랑 이것 보고는 박장대소했다.
Tanzania Dodoma 20 OCTP2010
<아프리카 8개월의 흔적 – 이모가 주신 HEAD운동화>
Tanzania의 수도는 Dar가 아니다. Dodoma이다. 땅덩이가 커서 중심에 위치한 Dodoma로 행정수도를 옮겼다. 미국의 뉴욕이 수도가 아니라 워싱턴이듯이. 한국도 진작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Dar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Uganda로 가기 위한 버스, 기차, 배 여행을 떠났다. 예상 이동수단은
Bus: Dar es Salaam -> Dodoma
Train: Dodoma -> Mwanza
Ferry: Mwanza -> Port Bell (Uganda, Kampala)
하지만 모두 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힘든 버스여행 3박4일이었다. Lonely planet을 다 믿으면 안 된다. 기차는 운행을 아예 하지 않았고, 배는 일반 여행객이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비용과 시간 면에서 별로 이득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탔는데 정말 ‘주구장창’ 버스만 탔다. 하지만 버스의 옆자리에 앉은 현지인들과 만남, 차창밖에 아프리카 경치, 버스정류장의 물건 파는 사람들을 통해 탄자니아의 일상을 조금 보았다.
Tanzania Dodoma 20 OCTP2010
<Chips 와 Meat 는 내 주식>
3박4일의 여행 동안 bread, chips, meat가 내 주식이었다. Chips & Meat는 꽤 괜찮았다. 아프리카 음식은 맛이 강하다. 짜고 달고 기름지고……내 입맛에 비교적 잘 맞았다. 다행이다
Tanzania Mwanza 22 OCTP2010
<Bismark Rock이 보이는 곳에서 Emanuel과 함께>
19살의 청년 Emanuel. Mwanza에 도착한 날 숙소를 찾기 위해 낑낑대며 가방을 들고 혼자 돌아다니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나 도와주었고, 다음날도 함께 하자고 하여 하루 종일 같이 돌아다녔다. 돈이나 물건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성심 성의껏 열심히 Mwanza를 안내해주며 날 도와주었다. 덕분에 Uganda를 가기 위한 버스표를 손쉽게 샀고, 핸드폰도 등록하여 당장 필요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Ferry를 타고 Lake Victoria를 건너는 게 계획이었는데 비용과 시간 면에서 도저히 탈수가 없었는데 그걸 알아보는 과정에 Emanuel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Thank you.
Tanzania Kikongo 23 OCTP2010
<Lake Victoria, Kikongo 에서 Busisi를 건너가는 큰 Ferry>
Lake Victoria를 배타고 가로질러 Uganda 가고 싶었지만 못 가게 되어 아쉬웠는데 아쉬움을 달래주는 일이 있었다. 버스와 여러 차들을 싣고 호수만을 가로지르는 Ferry가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보니 Lonely planet에 설명이 되어있었다. 30분 정도의 항해였지만 나름 호수를 배를 타고 갔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짠 내 안 나는 바다 같은 호수. 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호수이다.
<Reformed Theological College – RTC라 불리는 우간다의 개혁신학대학교>
Uganda에 왔다. 자년 이맘때 학장님이신 박목사님을 한국에서 뵈었다. 이듬해 8월에 우간다에 자전거 타고 가겠다고 선포하였다. 계획과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10월에 육로로 혼자서 결국 오고야 말았다. 컴퓨터 관련 일을 도와드리려 하는데 꼭 필요한 일에 쓰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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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mbia Lusaka
22SEP2010
<Chisomo hospital – ‘Chisomo’는 Nyanja (Zambia 의 지역언어 중 하나) 어로 은혜라는 뜻>
지난 6월 병원이 개원하기 전에 머물렀던 병원에 9월에 다시 돌아와서 개원후의 모습을 보았다. 병원 본관에는 크게 CHISOMO HOSPITAL 글자와 로고가 그려져 있었고 정문에서 들어오는 길이 많이 정리가 되었었다. 같이 일하던 현지인들 중 남아있는 사람도 있고 그만둔 사람도 있었다. 빅3라 불리는 아벨, 벤손, 하라 아저씨들은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농땡이 시망, 아탄 이는 그만두거나 짤렸다. 개원은 했으나 갖춰야 할 것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계속해서 건축과 물건정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로 컴퓨터 작업이나 물건정리 등을 하며 선교사님을 도왔다. 근처에 잠비아 한인교회도 건물모양을 갖추어졌고 목사님 가정이 근처 현지인 컴파운드에 살고 계셔서 가끔씩 놀러 가면서 한 달을 보냈다.
일행들과 있었던 한달 반의 시간은 영화 같았다. 이벤트가 있었고 즐거웠고 새로웠다. 하지만 혼자 돌아와서 보낸 한 달의 시간은 ‘삶’이었으며 진지했고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남을 위해 산다는 것, 서로서 이해한다는 것은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Zambia Lusaka 22SEP2010 (Choosuk of Korea)
<Zambia Lusaka의 한인식당(대장금)에서 추석맞이 한인모임에서 WJ, BM, SA,.. >
추석을 맞이었다. 2007년 추석에는 해외출장, 2009년에는 회사출근. 최근 추석에는 고향을 잘 못 갔다. 올해 또 어쩌다 아프리카에서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고향에서 보내는 명절보다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잠비아에있는 한인들이 모여서 함께 식사하고 나누고 송편경연대회도 했다. 원하는 가정에서 송편을 만들어와서 모임에 온 모든 가정에서 시식을 하고 투표를 해서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팀은 SA의 공로로 1등을 했다. 인맥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공정한 비밀투표로 결정되었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Zambia Lusaka 3
OCTP2010
<Zambia Korea Church - 4개월 전 교회 지붕 올리는데 동참>
Zambia Lusaka Mumbwa Rd. 에 있는 Zambia 한인교회. 목사님 가정과 함께하는 몇몇 가정이 있는데 참 쉽지 않다. 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 점점 회복되어 가고 있는 중. 많은 기도와 관심이 필요한 곳이다.
한국에는 교회당의 수가 참 많다. 교파도 참 많고 신학교도 많고 목사님도 참 많다. 해외에 계신 선교사님도 참 많다. 참된 성도와 선교사님을 욕 먹이는 불순한 성도와 거짓 선교사들은 회개해야 한다.
Zambia Lusaka 12
OCTP2010
<국제공인예방접종증명서 - Yellow Fever 예방 접종>
East Africa로 떠날 준비를 한다. 탄자니아를 비롯한 많은 동부, 서부, 북부 아프리카가 황열예방접종을 필수로 요구한다. 한번 맞으면 10년이 유효하다고 하여 아프리카 출발하기 몇 달 전에 이마 맞았다. 전국에 국립의료원에서 접종이 가능하며 맞고 난 2,3일 후에 몸살감기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진다. 생(生)백신 이어서 몸에 면역력이 생기기 위해 겪는 증상이라고 한다.
그 동안 남부 아프리카를 지나왔다. South Africa, Botswana, Ziambabwe,, Zambia, Malawi를 일행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지나왔다. 이제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 동부 아프리카를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간다. Tanzania, Uganda를 갈 예정이다. Kenya는 원래 예정했으나 연락된 선교사님의 개인사정과, 시간, 치안 등의 문제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Zambia Kapiri Mposhi
12 OCTP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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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zara train 1st class – Zambia 와 Tanzania를 잇는 2박3일간의 기차 여행>
47시간의 기차여행. 약 1500Km 를 달렸다. 1st, 2nd, supper seat, 3rd의 네 가지 종류의 등급으로 좌석이 분류가 되어있는데 표 파는 아줌마의 추천으로 1등석으로 과감하게 선택했다. 이틀 밤을 기차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침대 칸이 필요했고 그 중에서도 4인실인 1등석이 안전상 좋을 것이라는 현지인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현지인들에 섞여서 가고 싶기도 했지만 짐이 많고 장기간의 여행으로 몸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Lusaka에서 200km 떨어진 Kapiri Mposhi 가 Tazara train의 출발지였다. Tazara train은 식민시대가 끝나고 난 후 중국에서 만들어준 Zambia, Kapiri Mposhi와 Tanzania, Dar es Salaam을 잇는 열차이다. 열자 곳곳에 중국어를 볼 수 있었다. 4명이 정원인 1등석 칸에 둘째 날 오후까지 혼자서 갔다. 덕분에 사진 찍고, 먹고 자는데 불편이 없었고 심심하던 차에 탄자니아 승객 한 명이 타서 유익한 시간을 보내며 기분 좋은 여행을 했다. 그리고 국경에 정차해서는 이민국 사람들이 직접 기차에 타서 승객들을 찾아 다니며 여권심사를 한다는 사실. 국경을 지날 때는 늘 여러 가지로 불편했는데 이번에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하게 국경을 통과했다
Tanzania Mbeya to Dar 13 OCTP2010.
<Tanzania Mbeya를 지난 어느 기차역 - 1등석에는 물건 팔러 잘 오지 않는다>
15년 전쯤. 경남 진주에서 부산까지 어머니, 동생과 함께 비둘기호였는지 통일호였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기차를 타고 5시간에 걸쳐 기차여행을 한 적이 있다. 버스로 2시간이 안 되는 거리인데 왜 그랬는지 기차를 한번 타보았다. 지루했지만 아직까지 기억할 만큼 흐뭇한 기억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아프리카 잠비아, 탄자니아에서 47시간에 걸친 기차여행을 하고 있다. 기차역에 설 때마다 사람들이 음료수, 과자, 지역특산물들을 머리에 이고 승객들에게 팔기 위해 정말 열심히 뛰어가며 팔고 있었다. 주로, 2,3등석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도 마실 것을 살 용의가 있었는데 도저히 오지 않았다. 1등석에는 주로 외국인이나 돈이 좀 있는 현지인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거리에서 파는 사람들의 물건은 잘 사기 않는가 보다. 쓴 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이 기차 안에 있는 식당을 이용해야 했다.
Tanzania Dar es
Salaam 15 OCTP2010
내가 지나온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나라에 공통적인 음식이 있었다. 옥수수가루를 물을 넣고 끓여서 만든 백설기 비슷한 하얀색의 우갈리-탄자니아에서 우갈리라 불림. 우간다는 뽀쇼, 말라위와 잠비아에서는 시마, 짐바브웨에서는 사드자-와 삼각형의 튀김만두 같은 싸모사, 주먹보다 조금 막은 둥근 모양의 도넛 같은 부뜸부아-잠비아에서 부뜸부아라 불림, 이름이 조금씩 다름- 이렇게 세가지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았다. 그 중 우갈리는 우리나라의 쌀밥처럼 주식으로 먹는 대표적인 현지음식이다. 보츠와나에서 처음 맛을 보고는 필요한 경우에만 먹고 가능하면 쌀을 먹고 있다. 손으로 쪼물락 거리면서 먹는 게 제 맛이라 하여 그렇게도 먹어봤는데 확실히 그냥 먹는 것 보다 것 나으나 수저문화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밥이 최고였다.
탄자니아를 오기 전까지 현지 식당에서는 훅 불면 날라가는 쌀들이었는데 이곳에서는 한국 쌀 같은 찰기의 쌀을 맛볼 수 있었다. 이것이 북한사람들이 뿌려놓은 흔적이라고 한다. 탄자니아는 북한과 많은 친분을 유지했고 북한 공산당의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북한사람들이 많이 와서 농사를 지은 흔적이 이렇게 남아있는 것이라고 하니 남한사람으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탄자니아는 우간다를 가기 위해 거쳐갈 나라로 생각했는데 우연찮게 좋은 선교사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탄자니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아직 남아있는 모기장 후원금을 이용해 모기장봉사활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감사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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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yang
Nursing College Logo – 모자이크 타일 붙이기 전>
Daeyang Nursing College 가 2010년 10월 15일경에 개교를 한다. 본관, 기숙사 두개동으로 시작하는데 본관 1층 로비에 모자이크 타일로 채워질 멋진 로고가 있다. 지름 2m 남짓.
쉽지가 않다. 외국인이 현지정부의 정식인가를 받아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도와주러 온 것을 서로 알고있지만 형식과 절차는 너무나도 까다롭다. 식민시대에 적용된 시스템이 사람들의 의식수준은 고려치 않고 여전히 그대로 적용되어있기 때문인다. 갖춰야할 항목들은 어찌나 많으며, 시간약속은 왜그리도 안지키는지…검열리뷰에는 기숙사의 쓰레기통까지 있었다.
하지만 여러선교사님과 후원하시는 많은 분들이 말라위땅의 회복을 위해 정말 고군분투하신다.말라위에서 시작된 사랑의 나눔이 온 아프리카에 퍼져나가길 소망한다.
Malawi Lilongwe
15JUL2010
<왼쪽부터 근용,윌리암,윌리암,빙송,조셉 – 농띵이 시끼들…결국 다 짤렸다>
한국에서 컨테이너에
실려온 샤시창문을 꺼내어 씼고 창틀에 끼우는 작업을 수주에 걸쳐 했다. 키보다 큰 창문부터 가슴정도
크기, 허리정도크기의 다양한 창문 백수십쌍을 씼고 창틀에 끼워넣었다.
간호대학본관과 기숙에서 들어가는 것들이었다. 4명의 인부들과 함께했는데 나는 IT일도 조금씩 보면서 이들을 감독하는 역할이었다. 20대 초반의
순진한 애들인데 잔머리굴리는건 대왕이었다. 눈치슬슬보면서 내가 있으면 일하고 없으면 현장여기저기 쏘다니며
농땡이에 여념이 없었다. 어찌되었든 일은 되어져야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함께 있으려했고 먹을것도 주고
잔소리도하면서 일을 하기는했는데…이번 작업이외의 것을 더 이상 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신 집사님께서 과감하게 Fire 시키셨다. 시원섭섭하다. 진작 열심히 하지.
가운데 윌리암은 BM이 한국가기전 핸드폰까지 줬던 아이인데 결국에는 짤리고 말았다. 직접 나무를 깎아 페인트통과 철사를 이용해서 기타를 만들어서 나에게 연주를 보여주기도 했던 흐뭇한 기억이 있는데
안타깝다.
아프리카인들은 거의
대부분! 퇴근시간과 점심시간, tea time을 철저하게
지킨다. 대단한 사람들. 우리 정서로는 잘 이해가 안가지만
시간이 되면 자기 보스한테 시간됐다고 가야된다고 당연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퇴근시간 후에 작업장에는
한국사람들만 남는다.
Malawi Ntchisi 20JUL2010
<World Vision을 통해 Ntchisi에 세워진 학교>
Malawi에는 NGO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와있다. 듣도보도 못한 NGO도 엄청많다. 그중 월드비전은 잘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Global NGO이다. 대양병원에 관심이 많으신 말라위 한인회장님과 친분이 있었던 말라위지역 담당자인 YE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JS와 함께 월드비전 사업장을 방문했다. Lilongwe에서 한시간여를 차를 타고간 Ntchisi에 있는
사업장과 학교를 방문했는데 식수관련
사업을 시작하는 개축식 및 축하공연이 있었다. 동네 주민들과 대표들이 참석해서 식수사업시작을 알리고
도움주는 분들게 감사의 표를 하며 축하공연이 이어졌는데 춤과 노래는 보는이로 하여금 흐뭇하게 만들었다.
NGO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이번
여행을 마치면 관련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세상의 어떤곳은 ‘많음’을 주체하지 못해 버리고, 어떤 곳은 ‘부족함’에 허덕이며 구걸을 하고 있다. 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고 그
곳에 나도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많다. 그리고 NGO라는
곳을 통해서 일한다면 가장 효율적으로 즐겁게 할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왔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현장을
둘러볼수록 그 기대는 조금씩 보류되었다. 이런 단체를 통해 도움받는 나라의 사람들이 이제는 받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자립할 의지를 조금씩 잃어가는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전히 절대빈곤
때문에 자립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곳이 있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하는 곳도 있고, 지혜롭게 비켜 주어야하는 곳도 있다. 이를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마냥 퍼주는건 오히려 받는 사람들을 망친다는 사실. 내게
주어진 능력과 마음으로, 지혜롭게 나누고 가르치고 알려주는 일을 찾아야한다.
‘진짜 감동’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Malawi Ntchisi to
Lilongwe 20JUL2010
<들쥐 파는 아이>
월드비전 사업장에서 대양병원으로 돌아오는 길. 말로만 듣던 쥐 고기를 파는 사람을 만났다. 쥐를 잡아서 털을 깎거나 내장을 드러내지 않고 그대로 구워서 꼬챙이에 꽂아서 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바로 그 장면을 목격했다. 먹을 만 하다고 한다. 고정관념인지 나는 먹을 수 없었지만 뱀, 개, 메뚜기 먹는 것을 생각하면 먹을 수도 있겠다 싶다.
Malawi ?? 8AUG2010
< Outreach 나가서 진료하는 Dr.H –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나온 예사롭지 않은 Dr.>
일주일에 한번씩 대양병원에서는 시골마을로 Outreach를 나가서 무료로 진료하고 약을 나눠준다. 4개 마을을 한 달에 한번씩 가는 셈이다. JS가 떠나기 전 마지막 outreach를 따라 나섰다. 거의 대부분이 아이들을 등에 업고 나온 다양한 연령의 아줌마들이었다. 공터 가운데 저울이 있어서 아이들의 몸무게를 재어서 발육상태가 괜찮은지를 체크하여 적절하게 처방하고, 임산부들을 위한 기본적인 건강체크 등을 진행했다. 10시경 도착해서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2시경까지 진행됐고 모든 진료가 끝나고 나서야 밥을 먹었다. 난 Outreach에 참가할 명분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찍사로 그날의 소임을 다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늘 장사꾼이 있는 법. 바나나 3개가 5MK (Malawi Kwacha, 153MK=1$=1200\) 이어서 꽤 많이 사서 같이 나누어 먹었다. 크기가 작은 몽키바나나였지만 너무 쌌다.
15살 정도만 되면 애를 놓는다. 애가 애를 키운다. 동생들도 자기 동생을 업어서 데리고 다닌다.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내색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이 불편하다고 생각할까? 당연하다고 생각할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오히려 이들에게서 순진한 웃음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Malawi Lilongwe 14SEP2010
<12 persons cabinets and Nkosi - Carpenter로서 마지막 작업인 12인용 캐비냇>
대양병원에서 봉사자로 처음 스텝들 앞에서 소개받을 당시 난 IT specialist였다. 한달, 두 달이 지날수록 IT specialist 는 Carpenter로 변했다. 간호대학본관과 기숙사에 들어갈 가구들이 한국에서 날라와 있었다. 침대, 책상, 옷장, 서랍장, 테이블…많았다. 다행히 Green house의 조사장님께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셔서 말라위를 떠나는 전날에 완료할 수 있었다. 함께했던 Nkosi에게 감사를 표한다.
창문을 닦고 끼우던 일보다는 머리를 써가며 집중하며 조립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훨씬 재미있었고 뿌듯했던 작업이었다. 사실 이런 작업을 현지 노동자들에게만 맡기면 참담할 정도로 대충한다. 주인의식, 정교함 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다. 안타깝다. 짜증날 정도로 치열해진 경쟁사회의 한가운데 있었던 나로서 이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해하고 품지 않으면 함께할 수가 없다. 감동을 줄 수가 없다.
말라위를 떠난다. 3개월간의 비자기간을 꽉 채우고 많은 불편함을 안고 다음 길을 간다. 과연 아프리카의 불편함은 어디서 연유한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하나님의 계획이 궁금하다.
Zambia Lusaka 15SEP2010
<Chisomo hospital – 병원에서 guest house 가는 길 돌판에 쓴 성경구절>
돌아왔다. 6월에 자전거로 떠난 이곳 Zambia에 9월에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자전거를 탄 900여 Km 를 버스를 타고 그길 그대로 되돌아왔다. 자전거를 타며 힘들어서 쉬었던 곳, 잠을 청했던 곳, 음료수를 먹었던 곳, 사진 찍었던 곳을 차창 밖으로 테잎 돌려가듯이 혼자 감상에 젖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즐겼다. 돌아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Who knows? lol
5,6월에 한 달을 넘게 JS, BM, GY 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여기서 보냈다. 이제 다시 혼자 돌아와 그때 했던 것들이 어떻게 더 진행이 되었는지도 보고, 개원한지 한달 남짓한 병원에 필요한 손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