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mbia Lusaka 22SEP2010

<Chisomo hospital Chisomo Nyanja (Zambia 의 지역언어 중 하나) 어로 은혜라는 뜻>

지난 6월 병원이 개원하기 전에 머물렀던 병원에 9월에 다시 돌아와서 개원후의 모습을 보았다. 병원 본관에는 크게 CHISOMO HOSPITAL 글자와 로고가 그려져 있었고 정문에서 들어오는 길이 많이 정리가 되었었다. 같이 일하던 현지인들 중 남아있는 사람도 있고 그만둔 사람도 있었다. 3라 불리는 아벨, 벤손, 하라 아저씨들은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농땡이 시망, 아탄 이는 그만두거나 짤렸다. 개원은 했으나 갖춰야 할 것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계속해서 건축과 물건정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로 컴퓨터 작업이나 물건정리 등을 하며 선교사님을 도왔다. 근처에 잠비아 한인교회도 건물모양을 갖추어졌고 목사님 가정이 근처 현지인 컴파운드에 살고 계셔서 가끔씩 놀러 가면서 한 달을 보냈다.

일행들과 있었던 한달 반의 시간은 영화 같았다. 이벤트가 있었고 즐거웠고 새로웠다. 하지만 혼자 돌아와서 보낸 한 달의 시간은 이었으며 진지했고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남을 위해 산다는 것, 서로서 이해한다는 것은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Zambia Lusaka 22SEP2010 (Choosuk of Korea)

<Zambia Lusaka의 한인식당(대장금)에서 추석맞이 한인모임에서 WJ, BM, SA,.. >

  추석을 맞이었다. 2007년 추석에는 해외출장, 2009년에는 회사출근. 최근 추석에는 고향을 잘 못 갔다. 올해 또 어쩌다 아프리카에서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고향에서 보내는 명절보다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잠비아에있는 한인들이 모여서 함께 식사하고 나누고 송편경연대회도 했다. 원하는 가정에서 송편을 만들어와서 모임에 온 모든 가정에서 시식을 하고 투표를 해서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팀은 SA의 공로로 1등을 했다. 인맥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공정한 비밀투표로 결정되었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Zambia Lusaka 3 OCTP2010

<Zambia Korea Church - 4개월 전 교회 지붕 올리는데 동참>

Zambia Lusaka Mumbwa Rd. 에 있는 Zambia 한인교회. 목사님 가정과 함께하는 몇몇 가정이 있는데 참 쉽지 않다. 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 점점 회복되어 가고 있는 중. 많은 기도와 관심이 필요한 곳이다.

   한국에는 교회당의 수가 참 많다. 교파도 참 많고 신학교도 많고 목사님도 참 많다. 해외에 계신 선교사님도 참 많다. 참된 성도와 선교사님을 욕 먹이는 불순한 성도와 거짓 선교사들은 회개해야 한다


Zambia Lusaka 12 OCTP2010

<국제공인예방접종증명서 - Yellow Fever 예방 접종>

East Africa로 떠날 준비를 한다. 탄자니아를 비롯한 많은 동부, 서부, 북부 아프리카가 황열예방접종을 필수로 요구한다. 한번 맞으면 10년이 유효하다고 하여 아프리카 출발하기 몇 달 전에 이마 맞았다. 전국에 국립의료원에서 접종이 가능하며 맞고 난 2,3일 후에 몸살감기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진다. ()백신 이어서 몸에 면역력이 생기기 위해 겪는 증상이라고 한다.

그 동안 남부 아프리카를 지나왔다. South Africa, Botswana, Ziambabwe,, Zambia, Malawi를 일행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지나왔다. 이제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 동부 아프리카를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간다. Tanzania, Uganda를 갈 예정이다. Kenya는 원래 예정했으나 연락된 선교사님의 개인사정과, 시간, 치안 등의 문제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Zambia Kapiri Mposhi 12 OCTP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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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zara train 1st class Zambia Tanzania를 잇는 23일간의 기차 여행>

47시간의 기차여행. 1500Km 를 달렸다. 1st, 2nd, supper seat, 3rd의 네 가지 종류의 등급으로 좌석이 분류가 되어있는데 표 파는 아줌마의 추천으로 1등석으로 과감하게 선택했다. 이틀 밤을 기차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침대 칸이 필요했고 그 중에서도 4인실인 1등석이 안전상 좋을 것이라는 현지인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현지인들에 섞여서 가고 싶기도 했지만 짐이 많고 장기간의 여행으로 몸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Lusaka에서 200km 떨어진 Kapiri Mposhi Tazara train의 출발지였다. Tazara train은 식민시대가 끝나고 난 후 중국에서 만들어준 Zambia, Kapiri MposhiTanzania, Dar es Salaam을 잇는 열차이다열자 곳곳에 중국어를 볼 수 있었다. 4명이 정원인 1등석 칸에 둘째 날 오후까지 혼자서 갔다. 덕분에 사진 찍고, 먹고 자는데 불편이 없었고 심심하던 차에 탄자니아 승객 한 명이 타서 유익한 시간을 보내며 기분 좋은 여행을 했다. 그리고 국경에 정차해서는 이민국 사람들이 직접 기차에 타서 승객들을 찾아 다니며 여권심사를 한다는 사실. 국경을 지날 때는 늘 여러 가지로 불편했는데 이번에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하게 국경을 통과했다


Tanzania Mbeya to Dar 13 OCTP2010.

<Tanzania Mbeya를 지난 어느 기차역 - 1등석에는 물건 팔러 잘 오지 않는다>

15년 전쯤. 경남 진주에서 부산까지 어머니, 동생과 함께 비둘기호였는지 통일호였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기차를 타고 5시간에 걸쳐 기차여행을 한 적이 있다. 버스로 2시간이 안 되는 거리인데 왜 그랬는지 기차를 한번 타보았다. 지루했지만 아직까지 기억할 만큼 흐뭇한 기억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아프리카 잠비아, 탄자니아에서 47시간에 걸친 기차여행을 하고 있다. 기차역에 설 때마다 사람들이 음료수, 과자, 지역특산물들을 머리에 이고 승객들에게 팔기 위해 정말 열심히 뛰어가며 팔고 있었다. 주로, 2,3등석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도 마실 것을 살 용의가 있었는데 도저히 오지 않았다. 1등석에는 주로 외국인이나 돈이 좀 있는 현지인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거리에서 파는 사람들의 물건은 잘 사기 않는가 보다. 쓴 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이 기차 안에 있는 식당을 이용해야 했다.  


Tanzania Dar es Salaam 15 OCTP2010


내가 지나온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나라에 공통적인 음식이 있었다. 옥수수가루를 물을 넣고 끓여서 만든 백설기 비슷한 하얀색의 우갈리-탄자니아에서 우갈리라 불림. 우간다는 뽀쇼, 말라위와 잠비아에서는 시마, 짐바브웨에서는 사드자-와 삼각형의 튀김만두 같은 싸모사, 주먹보다 조금 막은 둥근 모양의 도넛 같은 부뜸부아-잠비아에서 부뜸부아라 불림, 이름이 조금씩 다름- 이렇게 세가지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았다. 그 중 우갈리는 우리나라의 쌀밥처럼 주식으로 먹는 대표적인 현지음식이다. 보츠와나에서 처음 맛을 보고는 필요한 경우에만 먹고 가능하면 쌀을 먹고 있다. 손으로 쪼물락 거리면서 먹는 게 제 맛이라 하여 그렇게도 먹어봤는데 확실히 그냥 먹는 것 보다 것 나으나 수저문화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밥이 최고였다.

탄자니아를 오기 전까지 현지 식당에서는 훅 불면 날라가는 쌀들이었는데 이곳에서는 한국 쌀 같은 찰기의 쌀을 맛볼 수 있었다. 이것이 북한사람들이 뿌려놓은 흔적이라고 한다. 탄자니아는 북한과 많은 친분을 유지했고 북한 공산당의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북한사람들이 많이 와서 농사를 지은 흔적이 이렇게 남아있는 것이라고 하니 남한사람으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탄자니아는 우간다를 가기 위해 거쳐갈 나라로 생각했는데 우연찮게 좋은 선교사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탄자니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아직 남아있는 모기장 후원금을 이용해 모기장봉사활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감사한 일.

Malawi Lilongwe JUL2010

<Daeyang Nursing College Logo 모자이크 타일 붙이기 전>

Daeyang Nursing College 2010 10 15일경에 개교를 한다. 본관, 기숙사 두개동으로 시작하는데 본관 1층 로비에 모자이크 타일로 채워질 멋진 로고가 있다. 지름 2m 남짓.

쉽지가 않다. 외국인이 현지정부의 정식인가를 받아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도와주러 온 것을 서로 알고있지만 형식과 절차는 너무나도 까다롭다. 식민시대에 적용된 시스템이 사람들의 의식수준은 고려치 않고 여전히 그대로 적용되어있기 때문인다. 갖춰야할 항목들은 어찌나 많으며, 시간약속은 왜그리도 안지키는지검열리뷰에는 기숙사의 쓰레기통까지 있었다.

하지만 여러선교사님과 후원하시는 많은 분들이 말라위땅의 회복을 위해 정말 고군분투하신다.말라위에서 시작된 사랑의 나눔이 온 아프리카에 퍼져나가길 소망한다


Malawi Lilongwe 15JUL2010

<왼쪽부터 근용,윌리암,윌리암,빙송,조셉 농띵이 시끼들결국 다 짤렸다>

 한국에서 컨테이너에 실려온 샤시창문을 꺼내어 씼고 창틀에 끼우는 작업을 수주에 걸쳐 했다. 키보다 큰 창문부터 가슴정도 크기, 허리정도크기의 다양한 창문 백수십쌍을 씼고 창틀에 끼워넣었다. 간호대학본관과 기숙에서 들어가는 것들이었다. 4명의 인부들과 함께했는데 나는 IT일도 조금씩 보면서 이들을 감독하는 역할이었다. 20대 초반의 순진한 애들인데 잔머리굴리는건 대왕이었다. 눈치슬슬보면서 내가 있으면 일하고 없으면 현장여기저기 쏘다니며 농땡이에 여념이 없었다. 어찌되었든 일은 되어져야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함께 있으려했고 먹을것도 주고 잔소리도하면서 일을 하기는했는데이번 작업이외의 것을 더 이상 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신 집사님께서 과감하게 Fire 시키셨다. 시원섭섭하다. 진작 열심히 하지. 가운데 윌리암은 BM이 한국가기전 핸드폰까지 줬던 아이인데 결국에는 짤리고 말았다. 직접 나무를 깎아 페인트통과 철사를 이용해서 기타를 만들어서 나에게 연주를 보여주기도 했던 흐뭇한 기억이 있는데 안타깝다.

 아프리카인들은 거의 대부분! 퇴근시간과 점심시간, tea time을 철저하게 지킨다. 대단한 사람들. 우리 정서로는 잘 이해가 안가지만 시간이 되면 자기 보스한테 시간됐다고 가야된다고 당연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퇴근시간 후에 작업장에는 한국사람들만 남는다.

 

Malawi Ntchisi 20JUL2010

<World Vision을 통해 Ntchisi에 세워진 학교>

Malawi에는 NGO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와있다. 듣도보도 못한 NGO도 엄청많다. 그중 월드비전은 잘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Global NGO이다. 대양병원에 관심이 많으신 말라위 한인회장님과 친분이 있었던 말라위지역 담당자인 YE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JS와 함께 월드비전 사업장을 방문했다. Lilongwe에서 한시간여를 차를 타고간 Ntchisi에 있는 사업장과  학교를 방문했는데 식수관련 사업을 시작하는 개축식 및 축하공연이 있었다. 동네 주민들과 대표들이 참석해서 식수사업시작을 알리고 도움주는 분들게 감사의 표를 하며 축하공연이 이어졌는데 춤과 노래는 보는이로 하여금 흐뭇하게 만들었다.

NGO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이번 여행을 마치면 관련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세상의 어떤곳은 많음을 주체하지 못해 버리고, 어떤 곳은 부족함에 허덕이며 구걸을 하고 있다. 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고 그 곳에 나도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많다. 그리고 NGO라는 곳을 통해서 일한다면 가장 효율적으로 즐겁게 할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왔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현장을 둘러볼수록 그 기대는 조금씩 보류되었다. 이런 단체를 통해 도움받는 나라의 사람들이 이제는 받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자립할 의지를 조금씩 잃어가는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전히 절대빈곤 때문에 자립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곳이 있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하는 곳도 있고, 지혜롭게 비켜 주어야하는 곳도 있다. 이를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마냥 퍼주는건 오히려 받는 사람들을 망친다는 사실. 내게 주어진 능력과 마음으로, 지혜롭게 나누고 가르치고 알려주는 일을 찾아야한다.

진짜 감동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Malawi Ntchisi to Lilongwe 20JUL2010

<들쥐 파는 아이>

월드비전 사업장에서 대양병원으로 돌아오는 길. 말로만 듣던 쥐 고기를 파는 사람을 만났다. 쥐를 잡아서 털을 깎거나 내장을 드러내지 않고 그대로 구워서 꼬챙이에 꽂아서 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바로 그 장면을 목격했다. 먹을 만 하다고 한다. 고정관념인지 나는 먹을 수 없었지만 뱀, , 메뚜기 먹는 것을 생각하면 먹을 수도 있겠다 싶다.


Malawi ?? 8AUG2010

< Outreach 나가서 진료하는 Dr.H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나온 예사롭지 않은 Dr.>

일주일에 한번씩 대양병원에서는 시골마을로 Outreach를 나가서 무료로 진료하고 약을 나눠준다. 4개 마을을 한 달에 한번씩 가는 셈이다. JS가 떠나기 전 마지막 outreach를 따라 나섰다. 거의 대부분이 아이들을 등에 업고 나온 다양한 연령의 아줌마들이었다. 공터 가운데 저울이 있어서 아이들의 몸무게를 재어서 발육상태가 괜찮은지를 체크하여 적절하게 처방하고, 임산부들을 위한 기본적인 건강체크 등을 진행했다. 10시경 도착해서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2시경까지 진행됐고 모든 진료가 끝나고 나서야 밥을 먹었다. Outreach에 참가할 명분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찍사로 그날의 소임을 다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늘 장사꾼이 있는 법. 바나나 3개가 5MK (Malawi Kwacha, 153MK=1$=1200\) 이어서 꽤 많이 사서 같이 나누어 먹었다. 크기가 작은 몽키바나나였지만 너무 쌌다.

15살 정도만 되면 애를 놓는다. 애가 애를 키운다. 동생들도 자기 동생을 업어서 데리고 다닌다.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내색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이 불편하다고 생각할까? 당연하다고 생각할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오히려 이들에게서 순진한 웃음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Malawi Lilongwe 14SEP2010

<12 persons cabinets and Nkosi - Carpenter로서 마지막 작업인 12인용 캐비냇>

대양병원에서 봉사자로 처음 스텝들 앞에서 소개받을 당시 난 IT specialist였다. 한달, 두 달이 지날수록 IT specialist Carpenter로 변했다. 간호대학본관과 기숙사에 들어갈 가구들이 한국에서 날라와 있었다. 침대, 책상, 옷장, 서랍장, 테이블많았다. 다행히 Green house의 조사장님께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셔서 말라위를 떠나는 전날에 완료할 수 있었다. 함께했던 Nkosi에게 감사를 표한다.

창문을 닦고 끼우던 일보다는 머리를 써가며 집중하며 조립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훨씬 재미있었고 뿌듯했던 작업이었다. 사실 이런 작업을 현지 노동자들에게만 맡기면 참담할 정도로 대충한다. 주인의식, 정교함 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다. 안타깝다. 짜증날 정도로 치열해진 경쟁사회의 한가운데 있었던 나로서 이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해하고 품지 않으면 함께할 수가 없다. 감동을 줄 수가 없다.

말라위를 떠난다. 3개월간의 비자기간을 꽉 채우고 많은 불편함을 안고 다음 길을 간다. 과연 아프리카의 불편함은 어디서 연유한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하나님의 계획이 궁금하다.

 

Zambia Lusaka 15SEP2010

<Chisomo hospital 병원에서 guest house 가는 길 돌판에 쓴 성경구절>

 돌아왔다. 6월에 자전거로 떠난 이곳 Zambia 9월에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자전거를 탄 900 Km 를 버스를 타고 그길 그대로 되돌아왔다. 자전거를 타며 힘들어서 쉬었던 곳, 잠을 청했던 곳, 음료수를 먹었던 곳, 사진 찍었던 곳을 차창 밖으로 테잎 돌려가듯이 혼자 감상에 젖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즐겼다. 돌아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Who knows? lol

 5,6월에 한 달을 넘게 JS, BM, GY 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여기서 보냈다. 이제 다시 혼자 돌아와 그때 했던 것들이 어떻게 더 진행이 되었는지도 보고, 개원한지 한달 남짓한 병원에 필요한 손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Zimbabwe Chirundu border 5MAY2010
 
<Zimbabwe Chirundu border – 국경이 열리는 새벽6시까지 국경철망아래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아프리카 최고의 환경조건임에도 최악의 경제상황 속에 있는 짐바브웨를 떠나 잠비아로 향했다. Zimbabwe 수도 Harare에서 Zambia 수도 Lusaka까지 400여 km인데 그 사이 코끼리 같은 동물들의 출현으로 안전상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Harare에서 저녁 8시에 출발하기로 한 버스는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 출발했다. 아프리카에는 비행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중교통은 사람이 꽉 차야 출발한다. 정시 출발은 절대 기대하지 말 것. 다음날 새벽 2시반. Chirundu 국경에 버스는 도달했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재미있는 모습이다. 아침 6시에 국경 문이 열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시간까지 차에서 자기도하지만 더러는 이불을 가지고 나와 철망근처의 평평한 땅에서 잠을 청한다. 국경근처에 여관이 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냥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밤을 보낸다. ‘국경의 밤’. 루시드폴은 이런걸 알고 제목을 붙였을까?

Zambia Lusaka 6MAY2010
<Zambia stump mission – Chisomo children hospital, 한달 넘게 머무른 곳>
  Zambia 수도 Lusaka의 서쪽외곽지역에 위치한 Stump mission(그루터기 선교회에서 파송 받으신 두 분의 선교사님이 계신 곳)에서 한 달을 넘게 머물렀다. Chisomo(잠비아 말로 ‘은혜’) 소아병원을 준비 중이어서 일행들과 함께 완전 즐겁게 일했다. 페인트칠하고 땅 파고 흙 나르고 잡초 뽑고 평탄화 작업하고 청소하고……또 한인교회를 위해 오신 목사님 가정의 두 MK(Mission Kids)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오랜만에 수학과외 했는데 아직 실력이 죽지 않았어! ㅋㅋ BM와 YW는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 

Zambia Lusaka 15MAY2010
<모기장 – 하나에 $3 330개를 구입>
  아프리카를 떠나기 전 계획한 중요한 프로젝트인 모기장후원활동을 위해 후원 받은 것으로 모기장을 구입했다 ‘거리의 아이들’사역 (노숙하는 아이들을 위해 집을 짓고 먹을 것을 제공하는 일)을 하시는 현지 아론목사님의 도움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모기장 330개를 구입했다. 4개의 마을에 우리일행이 직접 찾아가서 설치하고 전달하는 일을 했다. 특히 말라리아 예방을 위해 약품처리가 되어있어서 조심해야 했다. 한국의 원 터치 스피드 텐트 같은 것은 없었다. 

Zambia Keezwa 22MAY2010
<완성된 모기장 – 말라리아 모기 예방을 위한 약품처리가 된 모기장>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빈부격차가 심하다. Zambia 의 수도 Lusaka의 중심에서 불과 몇 Km떨어진 곳에도 흙 집에 맨 말로 다니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시골마을을 찾아 갔을 때 현지인들의 집을 보며 내가 참 많은 것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한국의 상대적인 가난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조차도 사치스러워 보인다. 나 조차도 마찬가지. 
TV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아프리카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현지마을에 모기장을 쳐주는 한국의 젊은이들. 햐~ 거창하다. 링크를 걸어본다.
http://www.kbs.co.kr/2tv/sisa/loveworld/vod/1654975_34240.html
 방송의 힘이 대단한 것 같다. 방송이 나간 후 어떤 아주머니께서는 백만 원을 선뜻 후원하셨다. 다큐멘터리가 사실에 근거하지만 완전 레알은 아님을 알게 해 준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덕분에 후원해준 분들께 공신력 있는 자료를 보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했다.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들 드린다. 

Zambia Susu 23MAY2010
<우물 – 시골마을에 설치된 우물>
  시골에는 전기와 수도가 안 들어오는 곳이 많다. 좀 다녀보니까 전기는 없어도 살만한데 물이 없으면 정말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우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은 것이다. MBC의 ‘단비’라는 프로그램(연예인들이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는 활동을 하는 예능프로그램)을 한번도 보지는 못했는데, 돌연 휴직을 하고 아프리카를 홀몸으로 배낭 여행하고 돌아온 김영희PD의 멋진 야심작이 종방하였다는 소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진은 모기장을 설치한 4개 마을 중 마지막 Susu마을에 설치되어있는 우물이다. 

Zambia Victoria Fall 24MAY2010
< Mosi oa Tunya – Victoria fall의 원래 이름. 원래 이름이 더 좋다 (천둥 치는 연기)>
  다큐멘터리촬영 차 다시 Victoria Fall에 갔다. Vic Fall은 짐바브웨와 잠비아 두 곳에서 볼 수 있다. 불과 한달 전에 짐바브웨 쪽으로 왔었는데 다시 와서 다른 각도에서 멋진 폭포를 감상했다. Victoria Fall은 Livingstone이 폭포를 발견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식민주의의 잔재. 천둥 치는 연기라는 뜻을 가진 Mosi oa Tunya. ‘모시 오아 투냐’ 완전 멋있는 폭포이름인데 다시 바꾸었으면 좋겠다. 내가 들고 있는 것은 방송용 카메라 ㅎㅎ

Zambia Victoria Fall 25MAY2010
<다큐멘터리 찍히는 이근용 – 별일을 다해보는군요>
  호홋. Vic Fall의 번지 점프하는 Vic Fall Bridge에서 촬영에 임하는 이근용. 처음에는 작위적인 모습이 많아 불편하고 거북함이 있었는데 PD가 성실하게 하고 나 스스로도 이로 인해 따듯함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재미있게 촬영했다. 나중에는 카메라 앞에서 온갖 주접을 떨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