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여행/아프리카에 해당되는 글 25건
- 2011.01.03 Uganda
- 2010.11.19 Tanzania to Uganda 1
- 2010.11.19 Zambia to Tanzania
- 2010.11.19 Malawi to Zambia
- 2010.09.06 나눔 2
- 2010.07.31 Zambia to Malawi 2
- 2010.07.31 Zimbabwe to Zambia 2
- 2010.07.05 Botswana and Zimbabwe 6
- 2010.06.20 말라위 입성 2
- 2010.05.26 2010년 6월 8일 화요일 오전 11시 20분 KBS2TV '사랑싣고 세계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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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에 시작한 아프리카여행을 슬슬 마무리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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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zania Dar esSalaam 15 OCTP2010
<동아프리카 최대시장 Kariakoo에서 구입한 약품 처리된 모기장>
하나에 $3가 조금 넘는 가격으로 모기장 80개를 구입했다. 후원금 $200에다가 WJ가 나머지를 부담했다. WJ와의 만남, 손선교사님과의 만남은 참으로 절묘했다. 잠비아를 떠나기 하루 전에 선교사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WJ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동향의 멋진 청년이었다.
모기장은 선교사님을 통해 탄자니아에서 필요한 여러 곳으로 나누어졌다. 작은 나눔을 할수 있어 감사하다
Tanzania Dar es Salaam 16 OCTP2010
<Coco beach – 손선교사님의 아름다운 뒷모습>
Dar es Salaam의 평화의 항구란 뜻이다. 동아프리카최대의 항구이다. 손선교사님과 WJ와 함께 찾아간 Coco beach는 예전에는 관리가 잘되어서 외국인이 많았다는데 지금은 그때만 못하다고 한다. 하지만 바다를 오랜만에 봐서 인지 바다의 짠 냄새가 향긋하다
손선교사님과 얘기하면서 삶의 방향과 가치, 실천에 대한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국의 평범해 보이는 일상도 분명 가치가 있다. 하지만 가치 있다고 믿는 것, 실제로 가치 있는 것들을 위해 뛰어드는 용기가 우리에게 좀더 필요하지 않을까? 몇 개월 후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상을 살게 된다. 취업을 하고 가정을 꾸릴 예정이다. 직장과 가정, 교회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 선을 긋고 할 것들을 하고 포기할 것들은 포기하며 주어진 일에 열심히 다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만족하기에 이번 아프리카여행은 너무 많은 것들을 보았다. 이 가슴에 놓여진 불씨를 언젠가 다시 활활 태우리라.
Tanzania Dar es Salaam 16 OCTP2010
<WK과 SH가 후원해준 tent – 더 필요한 곳에 쓰이기 위해 선교사님께 드림>
손선교사님은 탄자니아의 시골에 우물을 파는 사업을 하신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동안 전기는 없어도 살만하지만 물이 없으면 정말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만큼 물이 중요한데 아프리카의 많은 곳이 수도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쉽게 질병에 노출되어있다. 생명수가 될 우물을 파기 위해 일하시는 선교사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본인이 주선한 소개팅을 통해서 결혼에 골인한 커플이 후원해준 것으로 산 텐트인데 그 친구들도 기쁨으로 여길 것이라 생각한다.
Tanzania Bagamoyo 19 OCTP2010
<WJ – Livingstone의 흔적이 있는 Bagamoyo의 Catholic Museum으로 가는 길에서>
부산사나이 WJ. 유부남 WJ, 집사님 WJ. 한국에 있을 때는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비슷한 길을 가고 있었고 나도 그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정상이고, 약간이라도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작 내가 그때의 생각으로 비추어 비정상적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이제는 판단할 수가 없다. WJ또한 그런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잘생겼다.
한국이 이렇게까지 성장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은 교육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들이 모여서 한국의 큰 문제라고 얘기하는 주제 중 하나가 교육이다. 물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의 교육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잘하는지를, 설령 찾았다 하더라도 남과는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이 한국 교육의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수능’을 향해,’대학’을 향해,’취업’을 향해서 가는 길이 너무나도 똑같고 그것이 정상이라 생각한다. 다른 길을 가는 것은 너무나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도 이렇게 여기에 오기까지는 초인적인 용기가 필요했다. 살기 위한 발버둥. 그랬었다.
Tanzania Bagamoyo 19 OCTP2010
<Bagamoyo에서 만난 한국유니폼>
한국시장이 아니다. Tanzania Bagamoyo – 독일식민지 시절 수도, 노예무역이 성행했던 곳- 중심가의 한 옷 가게였다. 한국의 동네 어귀에 초록색 헌옷수집함에 모인 옷들이 분류되어 이런 곳에 오는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WJ랑 이것 보고는 박장대소했다.
Tanzania Dodoma 20 OCTP2010
<아프리카 8개월의 흔적 – 이모가 주신 HEAD운동화>
Tanzania의 수도는 Dar가 아니다. Dodoma이다. 땅덩이가 커서 중심에 위치한 Dodoma로 행정수도를 옮겼다. 미국의 뉴욕이 수도가 아니라 워싱턴이듯이. 한국도 진작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Dar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Uganda로 가기 위한 버스, 기차, 배 여행을 떠났다. 예상 이동수단은
Bus: Dar es Salaam -> Dodoma
Train: Dodoma -> Mwanza
Ferry: Mwanza -> Port Bell (Uganda, Kampala)
하지만 모두 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힘든 버스여행 3박4일이었다. Lonely planet을 다 믿으면 안 된다. 기차는 운행을 아예 하지 않았고, 배는 일반 여행객이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비용과 시간 면에서 별로 이득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탔는데 정말 ‘주구장창’ 버스만 탔다. 하지만 버스의 옆자리에 앉은 현지인들과 만남, 차창밖에 아프리카 경치, 버스정류장의 물건 파는 사람들을 통해 탄자니아의 일상을 조금 보았다.
Tanzania Dodoma 20 OCTP2010
<Chips 와 Meat 는 내 주식>
3박4일의 여행 동안 bread, chips, meat가 내 주식이었다. Chips & Meat는 꽤 괜찮았다. 아프리카 음식은 맛이 강하다. 짜고 달고 기름지고……내 입맛에 비교적 잘 맞았다. 다행이다
Tanzania Mwanza 22 OCTP2010
<Bismark Rock이 보이는 곳에서 Emanuel과 함께>
19살의 청년 Emanuel. Mwanza에 도착한 날 숙소를 찾기 위해 낑낑대며 가방을 들고 혼자 돌아다니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나 도와주었고, 다음날도 함께 하자고 하여 하루 종일 같이 돌아다녔다. 돈이나 물건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성심 성의껏 열심히 Mwanza를 안내해주며 날 도와주었다. 덕분에 Uganda를 가기 위한 버스표를 손쉽게 샀고, 핸드폰도 등록하여 당장 필요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Ferry를 타고 Lake Victoria를 건너는 게 계획이었는데 비용과 시간 면에서 도저히 탈수가 없었는데 그걸 알아보는 과정에 Emanuel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Thank you.
Tanzania Kikongo 23 OCTP2010
<Lake Victoria, Kikongo 에서 Busisi를 건너가는 큰 Ferry>
Lake Victoria를 배타고 가로질러 Uganda 가고 싶었지만 못 가게 되어 아쉬웠는데 아쉬움을 달래주는 일이 있었다. 버스와 여러 차들을 싣고 호수만을 가로지르는 Ferry가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보니 Lonely planet에 설명이 되어있었다. 30분 정도의 항해였지만 나름 호수를 배를 타고 갔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짠 내 안 나는 바다 같은 호수. 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호수이다.
<Reformed Theological College – RTC라 불리는 우간다의 개혁신학대학교>
Uganda에 왔다. 자년 이맘때 학장님이신 박목사님을 한국에서 뵈었다. 이듬해 8월에 우간다에 자전거 타고 가겠다고 선포하였다. 계획과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10월에 육로로 혼자서 결국 오고야 말았다. 컴퓨터 관련 일을 도와드리려 하는데 꼭 필요한 일에 쓰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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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mbia Lusaka
22SEP2010
<Chisomo hospital – ‘Chisomo’는 Nyanja (Zambia 의 지역언어 중 하나) 어로 은혜라는 뜻>
지난 6월 병원이 개원하기 전에 머물렀던 병원에 9월에 다시 돌아와서 개원후의 모습을 보았다. 병원 본관에는 크게 CHISOMO HOSPITAL 글자와 로고가 그려져 있었고 정문에서 들어오는 길이 많이 정리가 되었었다. 같이 일하던 현지인들 중 남아있는 사람도 있고 그만둔 사람도 있었다. 빅3라 불리는 아벨, 벤손, 하라 아저씨들은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농땡이 시망, 아탄 이는 그만두거나 짤렸다. 개원은 했으나 갖춰야 할 것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계속해서 건축과 물건정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로 컴퓨터 작업이나 물건정리 등을 하며 선교사님을 도왔다. 근처에 잠비아 한인교회도 건물모양을 갖추어졌고 목사님 가정이 근처 현지인 컴파운드에 살고 계셔서 가끔씩 놀러 가면서 한 달을 보냈다.
일행들과 있었던 한달 반의 시간은 영화 같았다. 이벤트가 있었고 즐거웠고 새로웠다. 하지만 혼자 돌아와서 보낸 한 달의 시간은 ‘삶’이었으며 진지했고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남을 위해 산다는 것, 서로서 이해한다는 것은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Zambia Lusaka 22SEP2010 (Choosuk of Korea)
<Zambia Lusaka의 한인식당(대장금)에서 추석맞이 한인모임에서 WJ, BM, SA,.. >
추석을 맞이었다. 2007년 추석에는 해외출장, 2009년에는 회사출근. 최근 추석에는 고향을 잘 못 갔다. 올해 또 어쩌다 아프리카에서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고향에서 보내는 명절보다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잠비아에있는 한인들이 모여서 함께 식사하고 나누고 송편경연대회도 했다. 원하는 가정에서 송편을 만들어와서 모임에 온 모든 가정에서 시식을 하고 투표를 해서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팀은 SA의 공로로 1등을 했다. 인맥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공정한 비밀투표로 결정되었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Zambia Lusaka 3
OCTP2010
<Zambia Korea Church - 4개월 전 교회 지붕 올리는데 동참>
Zambia Lusaka Mumbwa Rd. 에 있는 Zambia 한인교회. 목사님 가정과 함께하는 몇몇 가정이 있는데 참 쉽지 않다. 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 점점 회복되어 가고 있는 중. 많은 기도와 관심이 필요한 곳이다.
한국에는 교회당의 수가 참 많다. 교파도 참 많고 신학교도 많고 목사님도 참 많다. 해외에 계신 선교사님도 참 많다. 참된 성도와 선교사님을 욕 먹이는 불순한 성도와 거짓 선교사들은 회개해야 한다.
Zambia Lusaka 12
OCTP2010
<국제공인예방접종증명서 - Yellow Fever 예방 접종>
East Africa로 떠날 준비를 한다. 탄자니아를 비롯한 많은 동부, 서부, 북부 아프리카가 황열예방접종을 필수로 요구한다. 한번 맞으면 10년이 유효하다고 하여 아프리카 출발하기 몇 달 전에 이마 맞았다. 전국에 국립의료원에서 접종이 가능하며 맞고 난 2,3일 후에 몸살감기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진다. 생(生)백신 이어서 몸에 면역력이 생기기 위해 겪는 증상이라고 한다.
그 동안 남부 아프리카를 지나왔다. South Africa, Botswana, Ziambabwe,, Zambia, Malawi를 일행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지나왔다. 이제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 동부 아프리카를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간다. Tanzania, Uganda를 갈 예정이다. Kenya는 원래 예정했으나 연락된 선교사님의 개인사정과, 시간, 치안 등의 문제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Zambia Kapiri Mposhi
12 OCTP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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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zara train 1st class – Zambia 와 Tanzania를 잇는 2박3일간의 기차 여행>
47시간의 기차여행. 약 1500Km 를 달렸다. 1st, 2nd, supper seat, 3rd의 네 가지 종류의 등급으로 좌석이 분류가 되어있는데 표 파는 아줌마의 추천으로 1등석으로 과감하게 선택했다. 이틀 밤을 기차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침대 칸이 필요했고 그 중에서도 4인실인 1등석이 안전상 좋을 것이라는 현지인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현지인들에 섞여서 가고 싶기도 했지만 짐이 많고 장기간의 여행으로 몸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Lusaka에서 200km 떨어진 Kapiri Mposhi 가 Tazara train의 출발지였다. Tazara train은 식민시대가 끝나고 난 후 중국에서 만들어준 Zambia, Kapiri Mposhi와 Tanzania, Dar es Salaam을 잇는 열차이다. 열자 곳곳에 중국어를 볼 수 있었다. 4명이 정원인 1등석 칸에 둘째 날 오후까지 혼자서 갔다. 덕분에 사진 찍고, 먹고 자는데 불편이 없었고 심심하던 차에 탄자니아 승객 한 명이 타서 유익한 시간을 보내며 기분 좋은 여행을 했다. 그리고 국경에 정차해서는 이민국 사람들이 직접 기차에 타서 승객들을 찾아 다니며 여권심사를 한다는 사실. 국경을 지날 때는 늘 여러 가지로 불편했는데 이번에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하게 국경을 통과했다
Tanzania Mbeya to Dar 13 OCTP2010.
<Tanzania Mbeya를 지난 어느 기차역 - 1등석에는 물건 팔러 잘 오지 않는다>
15년 전쯤. 경남 진주에서 부산까지 어머니, 동생과 함께 비둘기호였는지 통일호였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기차를 타고 5시간에 걸쳐 기차여행을 한 적이 있다. 버스로 2시간이 안 되는 거리인데 왜 그랬는지 기차를 한번 타보았다. 지루했지만 아직까지 기억할 만큼 흐뭇한 기억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아프리카 잠비아, 탄자니아에서 47시간에 걸친 기차여행을 하고 있다. 기차역에 설 때마다 사람들이 음료수, 과자, 지역특산물들을 머리에 이고 승객들에게 팔기 위해 정말 열심히 뛰어가며 팔고 있었다. 주로, 2,3등석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도 마실 것을 살 용의가 있었는데 도저히 오지 않았다. 1등석에는 주로 외국인이나 돈이 좀 있는 현지인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거리에서 파는 사람들의 물건은 잘 사기 않는가 보다. 쓴 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이 기차 안에 있는 식당을 이용해야 했다.
Tanzania Dar es
Salaam 15 OCTP2010
내가 지나온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나라에 공통적인 음식이 있었다. 옥수수가루를 물을 넣고 끓여서 만든 백설기 비슷한 하얀색의 우갈리-탄자니아에서 우갈리라 불림. 우간다는 뽀쇼, 말라위와 잠비아에서는 시마, 짐바브웨에서는 사드자-와 삼각형의 튀김만두 같은 싸모사, 주먹보다 조금 막은 둥근 모양의 도넛 같은 부뜸부아-잠비아에서 부뜸부아라 불림, 이름이 조금씩 다름- 이렇게 세가지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았다. 그 중 우갈리는 우리나라의 쌀밥처럼 주식으로 먹는 대표적인 현지음식이다. 보츠와나에서 처음 맛을 보고는 필요한 경우에만 먹고 가능하면 쌀을 먹고 있다. 손으로 쪼물락 거리면서 먹는 게 제 맛이라 하여 그렇게도 먹어봤는데 확실히 그냥 먹는 것 보다 것 나으나 수저문화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밥이 최고였다.
탄자니아를 오기 전까지 현지 식당에서는 훅 불면 날라가는 쌀들이었는데 이곳에서는 한국 쌀 같은 찰기의 쌀을 맛볼 수 있었다. 이것이 북한사람들이 뿌려놓은 흔적이라고 한다. 탄자니아는 북한과 많은 친분을 유지했고 북한 공산당의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북한사람들이 많이 와서 농사를 지은 흔적이 이렇게 남아있는 것이라고 하니 남한사람으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탄자니아는 우간다를 가기 위해 거쳐갈 나라로 생각했는데 우연찮게 좋은 선교사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탄자니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아직 남아있는 모기장 후원금을 이용해 모기장봉사활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감사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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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yang
Nursing College Logo – 모자이크 타일 붙이기 전>
Daeyang Nursing College 가 2010년 10월 15일경에 개교를 한다. 본관, 기숙사 두개동으로 시작하는데 본관 1층 로비에 모자이크 타일로 채워질 멋진 로고가 있다. 지름 2m 남짓.
쉽지가 않다. 외국인이 현지정부의 정식인가를 받아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도와주러 온 것을 서로 알고있지만 형식과 절차는 너무나도 까다롭다. 식민시대에 적용된 시스템이 사람들의 의식수준은 고려치 않고 여전히 그대로 적용되어있기 때문인다. 갖춰야할 항목들은 어찌나 많으며, 시간약속은 왜그리도 안지키는지…검열리뷰에는 기숙사의 쓰레기통까지 있었다.
하지만 여러선교사님과 후원하시는 많은 분들이 말라위땅의 회복을 위해 정말 고군분투하신다.말라위에서 시작된 사랑의 나눔이 온 아프리카에 퍼져나가길 소망한다.
Malawi Lilongwe
15JUL2010
<왼쪽부터 근용,윌리암,윌리암,빙송,조셉 – 농띵이 시끼들…결국 다 짤렸다>
한국에서 컨테이너에
실려온 샤시창문을 꺼내어 씼고 창틀에 끼우는 작업을 수주에 걸쳐 했다. 키보다 큰 창문부터 가슴정도
크기, 허리정도크기의 다양한 창문 백수십쌍을 씼고 창틀에 끼워넣었다.
간호대학본관과 기숙에서 들어가는 것들이었다. 4명의 인부들과 함께했는데 나는 IT일도 조금씩 보면서 이들을 감독하는 역할이었다. 20대 초반의
순진한 애들인데 잔머리굴리는건 대왕이었다. 눈치슬슬보면서 내가 있으면 일하고 없으면 현장여기저기 쏘다니며
농땡이에 여념이 없었다. 어찌되었든 일은 되어져야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함께 있으려했고 먹을것도 주고
잔소리도하면서 일을 하기는했는데…이번 작업이외의 것을 더 이상 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신 집사님께서 과감하게 Fire 시키셨다. 시원섭섭하다. 진작 열심히 하지.
가운데 윌리암은 BM이 한국가기전 핸드폰까지 줬던 아이인데 결국에는 짤리고 말았다. 직접 나무를 깎아 페인트통과 철사를 이용해서 기타를 만들어서 나에게 연주를 보여주기도 했던 흐뭇한 기억이 있는데
안타깝다.
아프리카인들은 거의
대부분! 퇴근시간과 점심시간, tea time을 철저하게
지킨다. 대단한 사람들. 우리 정서로는 잘 이해가 안가지만
시간이 되면 자기 보스한테 시간됐다고 가야된다고 당연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퇴근시간 후에 작업장에는
한국사람들만 남는다.
Malawi Ntchisi 20JUL2010
<World Vision을 통해 Ntchisi에 세워진 학교>
Malawi에는 NGO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와있다. 듣도보도 못한 NGO도 엄청많다. 그중 월드비전은 잘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Global NGO이다. 대양병원에 관심이 많으신 말라위 한인회장님과 친분이 있었던 말라위지역 담당자인 YE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JS와 함께 월드비전 사업장을 방문했다. Lilongwe에서 한시간여를 차를 타고간 Ntchisi에 있는
사업장과 학교를 방문했는데 식수관련
사업을 시작하는 개축식 및 축하공연이 있었다. 동네 주민들과 대표들이 참석해서 식수사업시작을 알리고
도움주는 분들게 감사의 표를 하며 축하공연이 이어졌는데 춤과 노래는 보는이로 하여금 흐뭇하게 만들었다.
NGO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이번
여행을 마치면 관련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세상의 어떤곳은 ‘많음’을 주체하지 못해 버리고, 어떤 곳은 ‘부족함’에 허덕이며 구걸을 하고 있다. 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고 그
곳에 나도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많다. 그리고 NGO라는
곳을 통해서 일한다면 가장 효율적으로 즐겁게 할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왔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현장을
둘러볼수록 그 기대는 조금씩 보류되었다. 이런 단체를 통해 도움받는 나라의 사람들이 이제는 받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자립할 의지를 조금씩 잃어가는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전히 절대빈곤
때문에 자립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곳이 있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하는 곳도 있고, 지혜롭게 비켜 주어야하는 곳도 있다. 이를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마냥 퍼주는건 오히려 받는 사람들을 망친다는 사실. 내게
주어진 능력과 마음으로, 지혜롭게 나누고 가르치고 알려주는 일을 찾아야한다.
‘진짜 감동’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Malawi Ntchisi to
Lilongwe 20JUL2010
<들쥐 파는 아이>
월드비전 사업장에서 대양병원으로 돌아오는 길. 말로만 듣던 쥐 고기를 파는 사람을 만났다. 쥐를 잡아서 털을 깎거나 내장을 드러내지 않고 그대로 구워서 꼬챙이에 꽂아서 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바로 그 장면을 목격했다. 먹을 만 하다고 한다. 고정관념인지 나는 먹을 수 없었지만 뱀, 개, 메뚜기 먹는 것을 생각하면 먹을 수도 있겠다 싶다.
Malawi ?? 8AUG2010
< Outreach 나가서 진료하는 Dr.H –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나온 예사롭지 않은 Dr.>
일주일에 한번씩 대양병원에서는 시골마을로 Outreach를 나가서 무료로 진료하고 약을 나눠준다. 4개 마을을 한 달에 한번씩 가는 셈이다. JS가 떠나기 전 마지막 outreach를 따라 나섰다. 거의 대부분이 아이들을 등에 업고 나온 다양한 연령의 아줌마들이었다. 공터 가운데 저울이 있어서 아이들의 몸무게를 재어서 발육상태가 괜찮은지를 체크하여 적절하게 처방하고, 임산부들을 위한 기본적인 건강체크 등을 진행했다. 10시경 도착해서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2시경까지 진행됐고 모든 진료가 끝나고 나서야 밥을 먹었다. 난 Outreach에 참가할 명분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찍사로 그날의 소임을 다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늘 장사꾼이 있는 법. 바나나 3개가 5MK (Malawi Kwacha, 153MK=1$=1200\) 이어서 꽤 많이 사서 같이 나누어 먹었다. 크기가 작은 몽키바나나였지만 너무 쌌다.
15살 정도만 되면 애를 놓는다. 애가 애를 키운다. 동생들도 자기 동생을 업어서 데리고 다닌다.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내색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이 불편하다고 생각할까? 당연하다고 생각할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오히려 이들에게서 순진한 웃음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Malawi Lilongwe 14SEP2010
<12 persons cabinets and Nkosi - Carpenter로서 마지막 작업인 12인용 캐비냇>
대양병원에서 봉사자로 처음 스텝들 앞에서 소개받을 당시 난 IT specialist였다. 한달, 두 달이 지날수록 IT specialist 는 Carpenter로 변했다. 간호대학본관과 기숙사에 들어갈 가구들이 한국에서 날라와 있었다. 침대, 책상, 옷장, 서랍장, 테이블…많았다. 다행히 Green house의 조사장님께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셔서 말라위를 떠나는 전날에 완료할 수 있었다. 함께했던 Nkosi에게 감사를 표한다.
창문을 닦고 끼우던 일보다는 머리를 써가며 집중하며 조립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훨씬 재미있었고 뿌듯했던 작업이었다. 사실 이런 작업을 현지 노동자들에게만 맡기면 참담할 정도로 대충한다. 주인의식, 정교함 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다. 안타깝다. 짜증날 정도로 치열해진 경쟁사회의 한가운데 있었던 나로서 이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해하고 품지 않으면 함께할 수가 없다. 감동을 줄 수가 없다.
말라위를 떠난다. 3개월간의 비자기간을 꽉 채우고 많은 불편함을 안고 다음 길을 간다. 과연 아프리카의 불편함은 어디서 연유한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하나님의 계획이 궁금하다.
Zambia Lusaka 15SEP2010
<Chisomo hospital – 병원에서 guest house 가는 길 돌판에 쓴 성경구절>
돌아왔다. 6월에 자전거로 떠난 이곳 Zambia에 9월에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자전거를 탄 900여 Km 를 버스를 타고 그길 그대로 되돌아왔다. 자전거를 타며 힘들어서 쉬었던 곳, 잠을 청했던 곳, 음료수를 먹었던 곳, 사진 찍었던 곳을 차창 밖으로 테잎 돌려가듯이 혼자 감상에 젖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즐겼다. 돌아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Who knows? lol
5,6월에 한 달을 넘게 JS, BM, GY 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여기서 보냈다. 이제 다시 혼자 돌아와 그때 했던 것들이 어떻게 더 진행이 되었는지도 보고, 개원한지 한달 남짓한 병원에 필요한 손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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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mbia MPHANSYA 10JUN2010
<Baobab 나무 – ‘어린 왕자’에 나오는 정말 엄청 큰 바오밥나무>
Zambia에서의 행복했던 기억을 뒤로하고 Malawi로 향했다. 400여 Km를 달려야 하는 거리. 2010년 6월 7일에 Lusaka를 출발해서 6월 17일 Lilongwe에 도착했다. 열흘을 걸려 달려간 그 길은... 솔직히 욕 나온다. 혹시 자전거를 이용해서 Zambia Lusaka에서 Malawi Mchinji 국경까지는 Great east road이 불리는 길인데 이 길을 자전거로 가려는 분들은 차량이용을 추천한다. 언덕이 너무 많다. 너무너무 많다. 너무너무너무 많다. 죽어라 오르막을 올라서 수초간 내리막길을 달리고 다시 죽어라 오르막을 올라서 수초간 내려가고, 내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나 라는 물음을 하게했던 길이다. 물론 자전거를 이용했기에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nsima (하얀색 옥수수를 가루 내어 물을 넣어 끓인 잠비아, 말라위 사람들의 주식. 같은 음식을 Zimbabwe에서는 Sadza 라고도 하더이다)를 맛보기도하고, 학교에서 자기도하고, 정말 멋진 풍경을 두 눈에 담을 수도 있었고, 집채만한 바오밥나무를 볼 수 있긴 했다. 하지만 진짜 힘들었다.
남아공에서 올라오면서 바오밥나무를 몇 번 보긴 했는데 이렇게 큰 것은 처음이다. 바오밥이면 어떻고 바보밥이면 어떠하리. 신기하긴 했으나 그냥 나무다. 안 그래도 자전거 타느라 다리에 힘이 많이 빠졌는데 점프샷을 찍기 위해서 무진장 뛰어올랐다. 훗날 자식들에게 자랑해야지. 아부지도 저렇게 놀았어!
<Mchinji 국경을 바로 지나 도로표지판 앞에서 찰칵 – 목적지인 Lilongwe까지 120km! >
드디어 Malawi에 도착했다. 국경을 넘어서자 두 가지가 눈에 띄게 다가왔다. 아이들의 permanent hassling(lonely plant 의 표현을 빌리자면..)과 나무가 없는 민둥 초원. 아이들은 아중구(외국인)하면서 김미머니, 김미머니 하면서 우리에게 소리를 지른다. 5,60년 전 대한민국도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미군들을 향해 초콜릿을 달라고 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이랬을까? 자꾸 미관을 찌푸린다. 같은 하늘아래서 누군가는 온몸의 기름기를 빼기 위해 자해를 하고, 누군가는 기름기를 채우기 위해 구걸을 한다. Fair. 공정한. 이런 단어가 어울리는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 들판에 나무가 없는 이유는 전부 베어다가 땔감으로 쓰기 때문이다.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이 많기 때문에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서 나무를 이용한다. 그런데 잠비아랑 확연히 비교가 될 정도로 민둥민둥하다. 더 삶이 어렵다는 것이겠지.
그나저나 국경을 넘어 120km를 다시 달려서 Lilongwe시내를 가야 한다.
Malawi Lake Senga bay 30JUN2010
Daeyang Luke hospital에 도착했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세 달이나 머무르게 되었다. 그사이 Eric은 한국으로 갔다. 그와 함께한 아프리카에서의 100여일은 평생 동안 기억할 추억이 될 것이다. Eric을 회사에서 알고 지낸 3년보다 더 많이 알게 된 굉장한 시간이었다. 기념으로 Malawi Lake를 다녀왔다. Lilongwe로부터 한 시간을 달려 Salima에 도착하여 다시 20분 정도는 차를 타고 들어간 Senga Bay. 말라위 호수다. 바다 같이 생겼다. 똑같이 바다 같이 생겼는데 짠 내가 안 난다. 너무 좋다. 6,7월은 말라위에서 1년 중 가장 추운 때인지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백집사님께서 싸주신 도시락을 먹으며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프리카 말라위호수에서 라면 뽀그리를 누가 먹어봤을꼬...'Chris와 Eric. 아프리카 말라위 호수가에서 신라면 뽀그리에다 밥말아 먹다!' 저녁에 야식으로 먹으려고 준비해간 삶은계란이랑 사과를 텐트옆 나무에 걸어두고는 근처구경하러 다녀온 사이, 원숭이 이시키들이 다~훔쳐먹었다. 어찌나 괘씸한지! 아 열받아!
다른 지역에서는 스노클도 하면서 레저를 즐길 수 있다는데 이곳은 별게 없었다. 쉼. 여유. 1박2일의 달콤한 휴식이었다.
Malawi Lake Senga bay 30JUN2010
<말라위 호수에서 물고기 잡는 아이들>
말라위 호수에서 Chanbo라는 물고기가 산다. 몇 번을 먹어보았는데 조기 비슷한 맛나는 먹기 괜찮은 물고기다. 허나 호수에 디스토마(?)가 있다는데 괜찮은가 모르겠다. 호수변을 산책하고있는데 현지 아이들이 낚시를 하며 한가로이 놀고 있었다. 여행자답게 쭈뼛쭈뼛 다가가서 이런저런 얘기해보고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하면서 사진 찍고 보여주며 시간을 보냈다. 이들에게 아직 카메라는 가까운 물건이 아니다. 자기얼굴이 나온 사진에 무척이나 재미있어한다.
Malawi Daeyang Luke hospital 26JUN2010
자전거를 팔기로 했다. 처음에는 미친척하고 $4000, 안 팔려서 $3000, 또 안 팔려서 $1500으로 해서 광고전단 지를 시내 곳곳에 붙였다. 다행히 렉과 페니어를 남아공에서부터 여행하는 젊은 청년에게 팔 수 있었다. 관심 있어하는 전화는 꽤 많이 왔는데 실제로 그 가격에 살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전단지를 붙인후로 부터 3주후 (2010년 8월 21일) 나타났다. 자전거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직접 찾아왔다! 최종흥정가격은 $1300. 다행이다. 'Oracle' - 자전거 닉네임 - 을 떠나 보냈다. (2010년 8월 26일) 자전거와 관련된 모든 짐들을 다 떠나 보냈다. 이젠 진정한 베낭족이 되어 아프리카를 간다.
Malawi Daeyang Luke hospital AUG2010
10월 중순에 Daeyang nursing school 이 개교한다. 이 나라 대통령까지 온다고 한다. 건축이 막바지다. 3,4명의 똘마니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신축중인 3개건물의 곳곳을 청소했다. 난 Boss, 또는 Sir, 또는 Chris라고 불린다. 내 눈이 없는 곳에서 농땡이를 무진장 피운다. 이들은 책임의식, 주인의식 같은 것이 좀 부족하다. 마냥 퍼줄 수는 없고 일을 시키면서 스스로 기술을 배워 독립을 해야 할 텐데 거기까지 잘 못 간다. 그냥 시키는 일을 하는데 까지다. 답답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IT사람이 한 명 있다. Kingsley. 꽤 인텔리다. 컴퓨터를 전공해서 기계를 다루는 센스도 있고, 사회적인 문제를 가지고 소통을 할 수 있는 동갑내기 친구다. 한국이나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고 싶다던데 한국에 오면 재미있겠군. 그와 함께 병원의 전반적인 IT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개선사항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결국 돈이 문제다. 돈. 병원이 영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서 돈을 사용하기가 쉽지가 않다. 지난날 conti(나의 ex-company)에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쥐어짜던 위 분들의 심정을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IT스페샬리스트라 불리웠다. 최근에 간호사아줌마가 이젠 카펜터하냐고 물었다. ㅎㅎ 사실 카펜터도하고, IT도 하고, 잡부도 하고, 선교사님 비서도 하고, 아무거나 다 한다. 나 여기 눌러앉을까? ㅋ
그리고 이젠 일행들과 모두 헤어졌다. 여기서부터는 혼자간다. 5개월의 새로운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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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be river에서 찍은 달력그림 – 왼쪽에 강 건너 보이는 곳이 Namibia>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셨던 김목사님과 유선교사님이 계시는 Goodhope, Lobatse를 떠나 Gaborone을 지나 Francis town에 도착해서 현지 교민 분들의 도움으로 며칠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적잖은 도움으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 사이 JS, BM, KY는 Chobe 강이 있는 Kasane로 3박4일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사흘을 묵은 Chobe safari lodge에서 달력그림 몇 장을 건졌다. 저 멀리 나미비아가 보인다. boat tour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아프리카에는 big5라 불리는 큰 동물이 있다. 코끼리, 하마, 코뿔소, 표범, 사자이다. 그 중에 코끼리, 하마를 봤다. 난 사실 safari에 대한 동경은 없다. 그냥 동물들 다니는 것을 구경하고 사진찍는게 큰 의미가 없다. 그것보다 깨끗한 공기와 푸른 숲, 여러 나라를 가로지르는 강물이 더 싱그럽다.
Zambia Victoria Bridge 14APR2010
<111m 번지점프하는 이근용 - $110 썼다>
Kasane에 도착한 이튿날. 짐바브웨로 잠깐 넘어가서 Victoria fall을 보러 갔다. 짐바브웨의 double visa를 받은 다음 마음씨 착한 백인의 도움으로 Victoria fall까지 가게 되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폭포. 11월부터 3월경까지 우기인데 우리가 간 4월은 우기가 끝난 지 얼마 안되어서 폭포에 물이 굉장히 많았다. Vic-fall은 짐바브웨와 잠비아 두 군데서 볼 수 있다. 폭포의 정면에서 폭포를 마주하려면 짐바브웨 쪽, 약간은 거리를 두고 웅장한 폭포의 전체를 보려면 잠비아 쪽에서 보면 된다. 공교롭게도 우리 일행은 두 곳을 다 보았는데(잠비아가서 빅폴을 다시 구경하러 왔다.) 많은 사람들이 짐바브웨가 낫다고 하지만 난 잠비아가 더 나은 것 같다. 두 번 다 물세례를 제대로 맞으면서 구경했다. 맑은 날에도 비가 온다.
폭포구경 후에는 이번 아프리카 최대 미션인 번지점프! 111m높이의 번지점프는 너무나도 가슴 두근거리게 했고 뛰어내리는 순간의 희열은 말로표현하기 힘들다. 누가 돈 대주면 다시 뛸 거다.
Zimbabwe Bulawayo 19APR2010
<ZINATOEL ISLAM MASJID – 이슬람 아이들의 환대>
Muslim과의 만남. Natheem, Imtiyaz 를 Botswana Francis town에서 만나서 Zimbabwe Harare까지 같이 여행했다. 열흘 정도의 시간이었는데 색다른, 너무나도 흐뭇한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South Africa 출신의 두 Muslim. ‘하지’라는 이슬람의 종교기간에 사우디 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인 메카를 가기 위해 South Africa 부터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한 굉장히 독실한 친구들이었다. 하루에 다섯 번 어디서 무얼 하든 꼭 기도하고, 먹는 것부터 행동하는 모든 생활을 ‘알라’를 위해 ‘God willingness’를 따르며 사는 친구들이다.
스스로를 Christian Presbyterian이라고 소개하는 나는 이들의 삶을 보여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이슬람교, 무슬림. 이 두 친구의 세상을 향한 선한 마음에 나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굉장히 따듯한 성품을 가졌으며 배려와 섬김이 참으로 대단했다. 믿음의 부분에 있어서 함께할 수 없었지만 이들과 더 함께하고 싶었다. 보고 싶은 이들이다.
이들과 함께한 덕분에 Mosque에서 잠을 지기도하고 이슬람이 무얼 믿는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도 조금 알게 되었다. Zimbabwe의 두 번째 도시인 Bulawayo에 있는 Mosque에 들어서서 어린 무슬림들의 환대를 받았다. 너무나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Zimbabwe Bulawayo 19APR2010
<Salaah , 하루에 다섯번 기도하는 무슬림>
Muslim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한다. 메카방향을 향해 머리를 바싹 바닥에 닿도록 하여 하루에 수십 번 엎드린다. 내가 만난 두 Muslim의 말과 행동은 굉장히 진지했다. 이들의 움직임을 통해 계속해서 나를 보았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Zimbabwe KweKwe 24APR2010
<어딜 가나 요로코롬 사진 찍는 젊은이들>
Kwekwe 라는 중소도시. Zimbabwe의 마을에 내려서 걸어 다니는 것 조차 염려했던 우리는 두 친구 덕에 겁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비싼카메라를 들고 길거리를 다니며 웃고 떠들고. 수련회 바닷가에서나 찍는 저런 단체사진을 찍어보기도 했다. 재미있군.
Chris는 사진 찍는 중.
Zimbabwe Harare to 10 Km 28APR2010
<Eric, Natheem, Moon, Imtiyaz, Chris 의 마지막 라이딩>
헤어질 때가 되었다. 다섯 명의 젊은이가 마지막으로 함께 자전거를 타는 날이 왔다. Harare로부터 10km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시내까지 가기 전 수십 장의 기념사진을 찍어댔다. 사람은 만나고 헤어지는 법. 언젠가 그 추억을 가지고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게 우리 인생의 작은 재미 아니겠는가. 유쾌한 시간을 뒤로하고 우린 각자의 길을 가기 위해 다시 달린다.
<Harare 시내 – 유럽 같지 않은가! >
저기가 아프리카 도시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세계 최악의 경제상황을 겪고있는 나라 중 하나인 Zimbabwe의 수도 Harare이다. 영국의 식민지였고, Robert Gabriel Mugabe가 대통령으로 있는 말 많은 나라이다.
< Zimbabwe dollar - 지금(2010.5)은 안쓴다 >
불과 얼마 전만해도 100,000,000,000,000 이라는 숫자가 찍혀있는 지폐를 사용하여 콜라를 사먹었다. 작년(2009)부터 US dollar를 사용하고는 경제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은 고통을 받고 있는 힘겨운 나라이다.
Zimbabwe 2MAY2010
<Balancing Rock>
Botswana를 지날때 Zimbabwe대사관에서 메일을 통해 연락이 왔다. 밥 먹고 가라고. 오대사님의 초대를 받은 우리는 근사한 식사를 한끼 먹을 수 있었고 그곳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만남을 가졌다. 내가 여기서 한국대사관을 갈 줄이야...
대사관에서 만난 JY양과 그의 남친 JH. 이들이 있어서 Zim(Zimbabwe를 Zim, Zambia를 Zam이라 하더이다.)에서의 멋진 곳을 가볼 수 있었다. Zim은 돌이 많다. 나라이름도 ‘돌의 나라’라고 한다. Balancing Rock이라는 곳에 가서 보니 커다란 자연석들이 높다랗게 균형을 이루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볼만함.
Zimbabwe 2MAY2010
<Domboshawa>
반지의 제왕에서의 간달프가 군대를 이끌고 저 멀리서 나타날 것 같은 드넓은 초원과 나지막한 언덕이 있는 Domboshawa. 그리고 수천 년 전 벽화가 그려져 있는 동굴. Harare로부터 삼십 분 정도 차를 타고 간 그 곳은 꽤 멋졌다. 해가 넘어갈 즈음해서 간 그곳은 편안하게 휴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두 연인. 두 다리 쭉 펴고 등뒤로 귀여운 개 한 마리를 두고 서로 무슨 이야길 하는지……
부러우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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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8일 화요일 오전 11시 20분 KBS2TV 휴먼다큐멘터리'사랑싣고 세계로' 에서 방영된다고 합니다.
방영시간이 오전이라 직장,학교다니시는 분들은 못보시겠지만 인터넷으로 보시면될 것 같습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아아...부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