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9.8. 이근용
(서울대 문예지 제4호 기고글)

암(癌). 몸에 바윗돌 같은 것이 생겨서 앓게 된다는 한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질병. 몸의 세포가 다양한 원인(유전, 스트레스, 몸에 맞지 않는 먹거리 등)에 의해서 시간이 흘러도 죽지 않고 계속해서 에너지를 소모하며 증식하는 형태로 변이되는 질병이다. 요즘 TV에서 건강과 관련한 많은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중요한 주제가 암이며, 케이블 TV의 프로그램 사이에 나오는 광고들의 많은 수가 암과 관련한 보험광고이다. 건강에 대한 주의 및 예방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지만, 암과 관련한 자본주의적 의료시스템 속에서 의료인 및 환자들이 과도한 진단 및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도 많아지고 있다. 진단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질병의 조기발견과 함께 적절한 시기의 치료로 수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고 있지만, 유독 암의 세계에서는 진단기술이 발달한다고 해서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낮아지거나 완치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지는 않다. 치료가 되는 만큼 진단도 많이 하여 환자로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환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유수의 대기업과 대학이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서 암센터를 구축하고 암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요즘이다. 이러한 과정을 보건데 암의 완전정복에 대해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인류가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난제임에는 분명하다.
암이 죽지 않는 세포라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조차 알지 못했고 관련한 보험에 관심도 없었다. 힘겨운 암의 세계에 비교적 젊은 나이(만 서른둘)에 발을 들여놓게 된 이야기를 통해서 혹여나 직간접적으로 이 세계를 원치 않게 부딪히게 될지 모르는 분들에게 개인적이고 부족하지만 작은 정보와 경험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현재 진행형인 치병생활을 풀어보려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노령으로 인한 죽음보다 전염병이나 전쟁, 사고 등으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에 들어와 의학, 과학, 정치의 발달로 많은 질병이 정복되고, 전쟁이 줄어들어 평균수명이 증가하면서 몸의 외부적인 요인보다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암이라는 질병이 점차 대두되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불치병으로 여겨지는 질병이었는데, 근래에는 진단 및 치료법의 발달과 다양한 원인의 발견으로 점차 난치병으로 나아지고 있다. 다만 근대적 치료법에 있어서 화학요법으로 인한 힘든 치료과정과 각종 부작용으로 항암을 한다고 하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겨운 싸움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근래에는 항암제에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고 한방, 자연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암에 대한 시각을 다양화하면서 암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치료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본인은 서울대학교가 법인화가 된 이후 처음 시행된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되었다. 통상적으로 30대에 대장내시경 검사는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무의식적으로 건강검진의 선택사항에서 대장내시경을 체크하고 검사를 받고 조직검사를 통해 확진되었다. 정확히는 직장암 3기. 3기 중에서도 후반이어서 자칫 많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족, 직장동료들 모두 많이 놀랐지만 예상치 못한 우연한 기회를 통해 더 늦지 않은 때에 발견되어 말할 수 없는 감사함으로 치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건강검진 직전, 배변활동이 잦았고 간혹 혈변이 있긴 했으나 치질과 같은 현상이겠거니 가벼이 생각하며 건강검진 때 확인하고자 하였다. 암이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건강검진 결과는 보통 검진을 하고 1주일정도 후에 결과를 직접방문 또는 전화로 듣게 되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급히 병원을 방문하라는 내용을 전달받고 근무 도중 병원으로 가서 관련 설명을 들었다. 내 인생에 암의 세계가 펼쳐졌다. 자칫 발견이 더 늦어졌다면, 종양이 커져 직장(항문과 연결된 대장의 마지막 부분)을 막아서 배변활동이 어렵게 되고 기본적인 신진대사에 문제가 생기고 통증이 시작되며 살이 빠지는 등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적절한 때에 신속하게 직장 절제 수술과 화학적 항암요법을 시행했다. 당시 정보화본부에 근무했는데 보통 공대교수님이 본부장직을 맡게 되는 기관이지만, 마침 의대교수님이 재임하던 때여서 신속하게 병원 관련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 말로 다하기 힘든 감사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는 이 질병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고 어떤 방법으로 치료를 할지, 어떤 태도로 관리를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없이 병원에서 제시하는 방법대로 착실히 따라갔다. 총 6개월 동안 3주의 주기로 8번 항암주사를 맞고 항암제를 먹으며 성실하게 치료에 임했다. 항암을 하면서도 사무실 근무를 했는데 적절한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나 당시에는 마음의 어려움과 거리낌이 없이 치료와 사회생활을 잘 병행하였다. 보통 절제가 가능한 부위에 암이 생길 경우 제거 수술을 하고, 주변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잔존 암에 대한 처리를 위해서 화학적 항암요법을 시행하며, 이후 5년간 지속적으로 혈액검사, X-ray, CT, MRI등의 검사를 통해서 몸속에 암세포의 활동추이를 관찰하게 된다. 5년 동안 특이소견이 없을 시에 소위 '완치'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암환자로 진단받게 되면 그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평생을 암에 대해 염두하며(걱정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먹거리와 마음을 잘 관리하며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완치를 논하는 때가 오면 긴장을 풀기 쉬워지고 교만해지기 쉽다. 치병생활을 하는 중에서 그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자신감과 긴장을 항상 가지며 과욕을 부리지 않고 평생을 감사함으로 성실하게 삶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감사하게도 2014년 1월, 진단 후 예정되었던 수술과 화학요법이 모두 마무리 되었다. 이후 수개월 단위로 검사를 받으며 일상을 살아갔다. 더 늦지 않게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은 서울대학교 직원 건강검진과 직장동료 선생님들께 늘 감사하며 기존에 하던 업무를 동일하게 했다. 몸 컨디션이 점점 회복되면서 진단 받기 전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였다. 먹거리, 운동에 주의를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오랫동안 일을 하고 먹고 움직이던 패턴이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그 때가 위기였던 것을 시간이 흘러 깨닫게 되었다. 항암요법이 끝나고 이듬해 봄부터 허리 및 골반 근처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바른 자세로 눕거나 엎드릴 수 없었다. 정형외과 두 군데서 진료를 받고 x-ray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이 점점 심해졌는데, PET-MRI라는 좀 더 상세한 검진을 통해 폐, 간, 골반 근처의 림프절 등으로 전이가 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몸의 여러 곳으로 직장암이 전이된 것이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안타깝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수술 및 화학요법을 적극적으로 받았고,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1년여 동안은 암에서 벗어난 것이라 착각하며 생활했다. 하지만 결국 전이되었다는 소견을 들었을 때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기 어려웠고, 주변의 작은 것들까지 원망스러웠으며, 두려운 마음이 일상을 사로잡았다. 한동안 이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각종 부작용을 잘 감수하며 열심히 치료받으면서 몸 관리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노력해도 안 되는구나 하는 마음에 괴로웠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어떤 방법으로 치료하고 관리를 해야 암의 세계를 벗어 날 수 있을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굉장히 무기력한 상태의 시간들을 받아들여야했다.
다른 항암제(표적항암치료제)를 통한 화학요법을 다시 시행하자는 권고를 처음에는 받아들이고자 했으나, 동일한 치료법으로 과연 내가 어느 정도 회복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암환자들의 암에 대한 접근은 주로 양방의 방법인 절제 수술, 화학적 화학요법(항암제), 방사선이다. 그리고 한방에서의 뜸, 침, 부황 등이 있다. 그밖에 미즐토, 비타민, EFT, 카본, 고주파 온열, 풍욕, 냉온욕, 발반사, 관장, 단식 등 다양한 요법들이 있다. 물론 현재까지 양방의 세 가지 방법 외의 요법들은 우리나라 대형종합병원에서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방법들이다. 암을 치료한다기보다 보조적인 요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나아가 양방의 항암치료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삶에 대한 포기라는 인식도 많이 있다. 실례로, 본인이 항암을 일단 보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당교수님께 말씀드렸을 때, ‘항암을 하지 않으면, 그럼 죽을 것이냐’라며 강한 어조로 답변을 하셨다. 의학지식의 수준차이로 인해 그 자리에서 다른 치료방법에 대해 교수님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대형병원에서는 생명연장에 효과가 있다고 판단될 때까지 항암제를 바꿔가며 화학요법을 시행하고 있다. 물론 통계화된 자료를 이용해서 항암을 하고 있는 양방의 방법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부작용, 전이 및 재발을 통해서 보건데 개개인 삶의 질에 대한 우선순위는 생명연장에 밀려있다. 국소적인 암세포의 줄어듦에 관심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하게 전이가 된 상황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동일한 생활환경에서 유사한 치료를 받을 경우 암세포는 줄어들 수 있으나 몸의 전반적인 상태는 점점 힘들어질 수 있고, 시간과 돈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갈 수 있음이 예상되었다. 그리하여 일단 조바심을 내려놓고, 화학적 항암요법을 보류하고자 했던 것이다. 치료와 부작용과 관련하여 삶의 질을 고려하는 자연친화적인 몸의 관리가 필요했고, 몸과 마음의 통합적인 치료법에 대한 방법을 고민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다. 앞으로 살아갈 50년을 공격적 항암치료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감내하며 살아갈 것인지, 그에 절반이라도 혹은 더 짧은 인생이더라도 자연친화적인 삶을 통해 인간다운 환경과 평안한 마음으로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내 몸의 최종 주치의는 병원의 교수님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한다. 병원의 주치의는 일부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역할이지 결국에는 내가 내 몸에 대해 잘 알고 다양하게 일어나는 몸의 현상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내 몸이 어떤 음식과 움직임일 때를 가장 편안해 하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치병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화학요법 이외에 다른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며 결국에는 내 몸 자신의 면역체계에 대한 회복의 힘을 신뢰함이 필요했다. 물론 종양절제수술, 화학요법, 방사선을 이용한 치료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방법만이 절대적인 항암치료법이란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방, 자연치유 등의 방법을 알아가면서 몸을 관리했고, 먹거리와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서 스스로 이겨내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수개월이 흘러 눈에 두드러지게 통증이 경감되거나 암세포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암의 세계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환경과 스스로 몸을 대하는 자세, 마음의 문제를 변화시키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질병들에 비해 암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다른 많은 질병의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이야기하는데, 특히 암은 자연스런 몸의 흐름을 거스르는 마음과 행동, 먹거리를 통해 세포가 변이된 된 상태이므로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그 반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대의 과정이라 함은 공격적인 치료법(수술, 화학요법, 방사선)과 함께 기존의 생활습관을 180도 바꾸어, 깨끗한 환경과 먹거리 및 운동에 힘을 써야 하는 것이다. 관련해서 암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이 있고 다양한 치료법이 있는데, 조급함을 버리고 자연스런 몸의 흐름을 잘 관찰하면서 다양한 치료법을 함께 적용할 때 상승효과를 나타낸다. 양방의 치료법만 혹은 항암을 절대 거부하는 행태 등은 지양해야 한다.
암성 통증은 쉬이 잡히지 않는다. 1년여의 시간 동안, 바른 자세로 눕거나 엎드리지 못하고 엄마 뱃속의 아기처럼 늘 웅크려 잠을 청해야 했고, 낮 시간에도 ‘틱’과 같이 몸을 반복적으로 움직여서 진동을 주어 통증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했다. 가만히 정지 상태로 몸을 다스리지 못하여 정상적인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여서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 상태가 되었다. 원인을 파악하고자 다양한 곳에서 진료를 받고, 사진을 찍었지만 ‘림프절 부근의 암세포가 신경을 눌러서’ 정도의 예상만 할 수 있었고 좀 더 상세한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통증을 잡기위한 특정 부위에 집중적인 치료법을 시행하기 어려웠고, 궁여지책으로 다시 항암주사를 맞으면서 추이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2016년 3월 암진단 받은 후 3년이 흘러 두 번째 화학요법을 시작하였다. 일반 항암제와 표적항암제를 섞어서 2주 간격으로 최대 12번에 걸쳐서 주사를 맞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을 시작하면서 주의하고자 했던 부분은 2주 간격의 12번은 항암제가 시판되기 위해 임상시험을 통해 표준화된 통계치일뿐, 내 몸에 가장 최적화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2016년 8월 말 현재, 아홉 번째 주사를 맞고 있으며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한 식사를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 하고 있다. 또한 적절히 몸을 움직여서 소화가 잘되도록 하여 항암효과를 가장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3개월만의 CT검사를 통해 몸 상태를 확인한 결과, 전이된 모든 곳에서의 암세포가 줄었다. 통합적이고 전인격적인 치유생활의 결과로 생각된다.
이런 치료를 받으면서 어려운 것 중에 하나는 의사선생님과의 소통이다. 환자로서 궁금한 것이 많고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의료지식의 차이와 자본주의적 의료시스템으로 인해 소통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며 자칫 환자가 알고 있는 방법을 주장하면 꾸지람을 듣기 일쑤다. 서로의 입장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해를 할 수는 있다. 우리나라 경제시스템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분이어서 쉽사리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에 암의 세계를 살아가는데 힘겨운 부분 중 하나이다.

지난 3년의 시간동안 암의 세계에서 단순히 암세포의 줄어듦이 목표가 아닌 남아있는 인생전체에서 몸과 마음의 변화를 통한 새로운 삶의 방식과 사고의 전환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나누었던 ‘꿈’을 이야기하듯 눈앞의 연애, 결혼, 육아, 교육, 집과 자동차의 확장 등을 좇아가는 삶의 자세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구체적인 그림은 아직 요원하지만 몇 가지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생각하며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첫 번째로 내면의 확장이다. 우리 몸은 약 60조개의 세포로 형성되어있고 그중에 진단기기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암세포를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암세포가 매일 생겨나고 죽는 것은 모든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암환자라 함은 그 암세포가 진단 기기에서 발견될 정도로 모여 있는 상태가 되어 주변의 장기와 혈관 등에 악영향을 끼치는 상태가 된 사람이다. 누구나 암을 포함한 모든 질병에 대해 발병 잠재성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이겨낼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면역체계를 말함은 단순히 물질적인 몸의 능력뿐 아니라 정신적 능력 또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나, 그리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다양한 자극에 어떤 자세로 반응을 하며 적절하게 소화해 내느냐가 암세포를 다스릴 수 있는 면역능력의 핵심이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것을 믿는다. 깊고 넒은 의식수준을 계발함으로 면역능력을 키워가고자 노력하는 지난 시간들을 보냈고, 앞으로도 의식세계를 다방면으로 확장해나가고자 한다.
두 번째로 고독을 누리는 것이다. 단순히 외로움, 혼자됨을 힘겨워하지 않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직 결혼 전이지만, 일반적으로 인생에 가장 친밀한 관계라고 생각하는 부부관계에서 조차도 외로움은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혼자됨을 깊이 있게 묵상함으로 삶과 죽음, 그리고 암세포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흐름을 깨닫는 것이다. 수천만 원의 항암제를 투여하고도 아무 효능이 없는 경우가 있고, 인위적인 치료법을 모두 끊어도 감쪽같이 암세포들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확률 및 통계적인 이성의 방법으로 암의 세계를 접근 하고 있는 요즘의 암생태계이지만, 분명 고독의 단계를 극복한다면 암이 주는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정체, 나를 아는 것이다. 언제든 죽을 수도 있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는 아니다. ‘나’라는 인격을 제대로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 평생을 두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떠한 위치에 있으며 관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그 끝은 어디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 과정 어딘가에서 나를 더 깊이 알게 된다면 암세포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우리가 가장 의문스러워하는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마지막 정점은 죽음이 아닌가. 정상적인 세포가 비정상적인 세포로 변하게 된 원인을 이해한다면 그 반대의 과정을 위해 남은 인생을 노력해야한다. 불가항력적인 유전의 영향조차도 평생을 두고 노력한다면 하늘도 도울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험하지만, 죽음이라는 인류의 최대 난제를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심리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면 암의 세계는 분명 정복된다고 생각한다.

체념, 포기와 같은 단어를 사용해야하는 할 것 같은 삶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과거의 꿈, 지나쳐 버린 관계, 돌이킬 수 없는 말, 불치(난치)병, 죽음. 하지만 그러한 것들과 관련하여 관점의 변화를 가지고 긍정적 해석을 통한다면 충분히 태도를 개선할 수 있다. 평생을 두고 몸을 관리해야하며, 보편적 통계상으로 완치되었다하여도 지속적인 관리가 되지 않으면 언제든 재발, 전이가 될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암환자의 삶이지만, 이제는 괜찮다. 스스로 위로하는 많은 시간이 있었고, 원망과 좌절로 우울함을 깊이 누리는(?) 시간도 있었다. ‘암을 낭비하지 말라’라는 문장으로 암에 대한 태도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 시간을 통해 정상인의 시각 밖의 세상을 보고 느낌으로 인생의 깊이와 넓이를 더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직 한창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결과를 낙관만 할 수는 없지만, 단순한 두려움과 조바심은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유는 통증과 죽음에 대한 관점이 나름대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죽음보다 통증이 더 무섭다. 잠을 자지 못하고 오한과 구토, 설사, 진통으로 몸의 변화가 일어나는 밤을 겪고 나면 차라리..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변화의 굴레 속에서 회복의 변화를 통해 자신감이 점점 생기고 있다. 이 길을 직간접적으로 보거나 겪는 분들이 있다면 힘을 드리고 싶다. 힘들 수 있지만 못 걸어갈 길은 아닌 것임을 계속 보여드리고 싶다.
문예지 지난 호에는 아프리카를 다녀온 여행기를 기고했다.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다녔던 상황과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에서 글을 쓴다. 극과 극은 통하는 것인가. 그때는 희망과 즐거움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이번에는 위로와 도움의 글이 되면 좋겠다.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 가톨릭 사제가 쓴‘상처 입은 치유자(원제: The wounded healer)’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아픔과 슬픔을 아는 이가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누구보다 진정성 있는 위로를 줄 수 있다. 아직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과정이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과 앞으로 극복해 낼 과정과 결과를 통해 소소한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제 3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현재 진행 중이며 앞으로 이 몸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사실 예상하기 어렵지만 분명 후회 없이 암의 세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끔 진통제를 복용하는데, 암성통증을 관리하는 마약성 진통제라 복용 시 약간의 몽롱함과 나른함으로 눈꺼풀이 감겼다 떴다하면서 타이핑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상황에 힘겨워하며 그 무엇을 원망하며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힘을 낼 수 있도록 다양한 곳에서 도움을 받았고, 스스로 감내하고 있다. 그리하여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치병생활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힘겹지만 계속해서 극복해나갈 나의 모습을 기대한다. 끝.